가을 하면 단풍, 단풍 하면 설악산이다. 설악의 가을은 산 전체가 불타오르는 듯한 만산홍엽이다. 굽이굽이 산세 따라 붉고 노란 잎사귀들이 황홀한 향연을 펼친다. 대청봉을 중심으로 서북능선과 공룡능선을 채색한 물감이 계곡 아래로 흘러내려 산에 드는 탐방객의 마음마저 물들인다.
설악산은 어느 계절, 어디를 찾아도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강원도 인제 쪽 내설악 백담계곡과 속초 지역 외설악 천불동 계곡이 단풍 명소로 손꼽힌다.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내설악이 여성적이라면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는 외설악은 남성적이다. 높은 산일수록 계곡이 깊고 폭포나 흐르는 물의 담수(潭水)가 아름답다. 여기에 바위산 벼랑 절벽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본래 색보다 더 짙은 단풍으로 거친 바위에 생명줄을 걸고 암벽을 수놓으며 산수경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 바로 천불동 계곡이다.
천불동 계곡은 비선대에서 천당폭포까지 약 3.5㎞ 구간을 일컫는다. 하늘을 향해 솟은 바위가 천 개의 불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암릉의 미가 빼어나다. 가을이면 바위틈마다 물든 단풍이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만든다.
2013년 3월 대한민국 명승 101호로 지정됐다. 와선대(臥仙臺)를 비롯해 비선대·문주담(文珠潭)·이호담(二湖潭)·귀면암(鬼面岩)·오련폭포(五連瀑布)·양폭(陽瀑)·천당폭포(天堂瀑布)를 품고 있다.
초입인 설악동에서 비선대까지 3㎞는 평범하고 순탄한 산책길이다. 중간에 계곡을 건너는 다리 오른쪽으로 멀리 ‘오목한 고개’인 저항령이 보인다. 1983년 ‘설악산 마지막 곰’이 밀렵꾼의 총탄에 숨을 거둔 곳이다. 비선대에 서면 미륵봉(장군봉), 형제봉, 선녀봉(적벽)이 우뚝하다. 적벽에는 암벽 마니아들이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비선대를 지나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한 굽이 돌 때마다 기암과 단풍이 어우러진 풍광이 반긴다. 깔딱고개를 지나 만나는 귀면암은 천불동을 지키는 수문장이다.
오련폭포는 천불동 계곡에서도 단풍이 가장 빼어난 곳이다. 기암괴석 사이로 다섯 개 폭포가 연이어 있다. 단풍만큼 고운 것이 계곡수의 물빛이다. 맑고 푸르다. 하늘 향해 치솟은 기암괴석의 절벽에 생명줄을 달고 사는 나무들의 오색찬란한 가을색과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에 에메랄드빛 담수들이 이어지는 풍광은 금강산 만폭동에 못지않다. 그 속을 걷는 탐방객들 또한 단풍 일부가 된다.
양폭대피소를 지나면 양폭(陽瀑)이다. 우렁차게 떨어지는 폭포가 다이내믹하다. 그 왼쪽 골짜기에는 출입이 금지된 음폭(陰瀑)이 숨어 있다. 이 두 개의 폭포를 합쳐 양폭(兩瀑)이라 부른다. 양폭에 올라서면 계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천당폭포가 기다린다. 이름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로 보이기도 하지만, 밑에서 오르기에는 길이 너무 험해서 ‘도달하기 어려운 폭포’라는 의미다. 하얀 옷고름처럼 단아하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초록 치마 같은 웅덩이로 뛰어든다. 이곳에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희운각대피소·소청·중청·대청과 공룡능선으로 갈라지는 무너미고개에 닿는다.
여행메모
단풍철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 조기 만원
내달 30일까지 청초호 일대 ‘속초 국화전’
단풍철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 조기 만원
내달 30일까지 청초호 일대 ‘속초 국화전’
단풍철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려면 새벽 일찍 도착해야 한다. 주차요금은 6000원, 12시간 초과 시 1만원이다. 걸어서 30분 전 지점에 무료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주말에는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다.
설악산 천불동 계곡 코스는 설악동~비선대~귀면암~병풍교~오련폭포~양폭대피소~천당폭포를 오간다. 거리는약 7㎞에 왕복 6시간 이상 소요된다. 코스 난이도는 비선대까지 '쉬움', 양폭대피소까지 '보통'이다. 산행 후 척산족욕공원에서 자연 속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설악산 초입의 상도문마을은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고을이다. 마을 골목이 돌담으로 미로처럼 연결돼 있어 시골의 정취를 즐기며 오붓하게 산책하기 좋다.
사랑을 테마로 한 국화 작품으로 가득한 '2025 속초 국화전'이 11월 30일까지 청초호유원지 분수광장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설악산(속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