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김정은 러브콜’에도… 미 일각 “비핵화 양보는 실책”

입력 2025-10-29 02:03
최선희(왼쪽) 북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무부 청사 접견실에 함께 들어서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번 회담에서 전 세계 긴장 고조의 이유가 ‘미국과 그 동맹들의 공격적 행동’이라는 데 공통된 이해가 표명됐다고 밝혔다. TASS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연일 회동을 제안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를 양보할 경우 한국과 일본에서도 핵 보유 논의가 일어날 것이라는 미국 언론 전망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27일(현지시간)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또 다른 회담을 모색하고 있지만 지금은 2019년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러시아와 중국에 더 가까워지고 대담해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트럼프가 이번 주 김정은에게 거듭 회담을 희망하는 것은 트럼프의 즉흥적 스타일에 대한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최근 북한을 “일종의 핵보유국”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WP는 “북한이 영구적으로 핵보유국 대열에 합류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암시처럼 불길하게 들렸다”며 “이런 중대한 양보는 실책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오랜 비핵화 목표를 포기한다면 일본과 한국에서도 핵무기 보유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촉발할 것”이라며 “두 동맹국은 이미 미국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안보 파트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품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김정은과의 협상에는 목표와 레드라인이 필요하다”면서 “김정은이 핵 야망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고 미국의 동맹국들이 같은 입장을 유지하도록 하며 나쁜 협상에선 기꺼이 물러설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대담에서 싱크탱크 애슬랜틱카운슬의 인도·태평양 안보 부문 책임자 마커스 갈라우스카스는 한·미동맹 대응의 사각지대를 노린 북한의 ‘회색지대 공격’ 시나리오가 실질적인 가능성이 있다며 한·미가 이에 잘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회색지대 공격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처럼 전면전에는 못 미치는 형태의 도발을 가리킨다. 시드니 사일러 CSIS 선임연구원은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북·미 정상회담의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김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회담 성사와 관련한 공이 돌아가는 상황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관영 매체는 28일에도 트럼프의 제안에 아무런 답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대신 전날 러시아로 출발한 최선희 외무상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사실만 보도했다. 최 외무상은 28~29일 벨라루스에서 열리는 유라시아 안보 국제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이 외국 정상을 만날 때는 외무상과 동행했기에 최 외무상이 없는 29일까지는 북·미 회담 성사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트럼프가 김 위원장과 대화할 기회가 있으면 아시아 순방 일정을 연장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을 감안하면 30일이나 31일에 북·미 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남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석좌교수는 “시간상 최선희가 돌아와서 30일이나 31일에 북·미 정상 회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며 “김정은의 결단만 남았다”고 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박준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