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저 가수 어디서 봤는데…’ 할 때가 있다. TV 화면에 나오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 찾아보려면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검색을 해야 한다. 그러기엔 좀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어 인공지능(AI)을 탑재했다는 셋톱박스에 물어보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란 답이 돌아온다. 일상 속으로 AI가 스며들고 있다지만 아직은 진짜 필요할 때 AI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불편함을 좀 더 쉽게 해소해주는 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갤럭시 XR’이 등장했다.
삼성전자가 지난 22일 출시한 헤드셋 기기 갤럭시 XR을 사흘간 체험해봤다. 애플 ‘비전프로’와 작동법이 거의 유사해 사용법을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XR 기기를 써봤던 사용자라면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을 듯했다.
첫 인상은 ‘비전프로와 많이 닮았다’는 것이었다. 화면 크기를 조절하는 방식이나 화면을 선택하는 손짓은 비전프로와 동일했다. 엄지와 검지를 붙였다 떼면 터치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기기가 손가락을 인식하는 정확도도 높았다.
앞서 출시된 비전프로의 실패를 딛는 데 필요한 요소들은 어느 정도 구색을 갖췄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갤럭시 XR에서 바로 구동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가 다양했고, AI도 비교적 손쉽게 활용할 수 있었다. 갤럭시 XR에는 구글 제미나이와 대화에 특화된 제미나이 라이브가 탑재돼 사용자가 보는 것과 듣는 것을 같이 인식한다. 제미나이를 부르려면 XR 기기 위 버튼을 누르고 대화를 시작하면 된다. 보고 있는 화면을 함께 보면서 대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유튜브에서 오디션 프로그램 영상을 보면서 제미나이에게 “이 가수 누구야”라고 말하면 제미나이가 누구인지 찾아서 알려줬다.
다만 제미나이는 실시간 정보를 알려주지는 못했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 경기가 진행되던 시간에 제미나이에게 “지금 한화와 LG 점수를 알려줘”라고 묻자, 제미나이는 아직 경기가 진행 중임에도 “LG의 승리로 끝났다”며 거짓 정보를 알려줬다. “사실이 아니지 않느냐”며 재차 물어보자 제미나이는 “실시간 정보를 제가 알기는 어렵다”고 정정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영상을 보기엔 좋았지만, TV나 태블릿으로 볼 때와의 차이점은 크지 않았다. XR 전용 영상이 적어서다. 유튜브에 일부 올라와 있는 XR 전용 영상을 보면 가상현실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 영상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구글 지도를 통해 스트리트뷰를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신기하다’는 감상 외에는 활용도가 높지 않아 보였다.
헤드셋 기기의 특성상 오래 착용하고 있으면 피로감도 느껴졌다. 착용감은 나쁘지 않았으나, 무게 탓에 이마와 뒤통수에 물리적 부담이 있었다. 545g의 무게가 얹어져 있는 만큼 오래 쓰기엔 무리가 있었다. 눈의 피로감도 있었다. 눈 바로 앞에서 영상을 보기 때문에 XR 전용 영상을 볼 때는 어지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또 XR 기기의 후발주자로서 좀 더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하지 않느냐는 아쉬움이 남았다. AI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딱 생각한 수준 만큼의 성능을 보여줬다. 새로운 IT 기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장난감’이 아닌 진짜 IT 기기로서의 활용도를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