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언어 뛰어넘어 역사… 1974년 한국서 배웠다”

입력 2025-10-29 03:00
미국 새들백교회를 설립한 릭 워런 목사가 27일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에서 51년 전 한국에서 복음의 능력을 확인했다고 전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1974년 8월 서울 여의도광장(현 여의도공원). 연인원 655만명이 모인 ‘엑스플로74’ 집회 한편에 188㎝ 장신에 긴 금발을 가진 스무 살 청년도 서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분이 있냐”는 사회자의 말에 그는 손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던 미국 청년은 사영리 책자를 들고 백화점에서 복음을 전해 보기로 했다. 사영리는 기독교 구원을 네 가지 핵심 원리로 설명하는 복음 전도 요약문이다.

1974년 '엑스플로74'에 참가했던 워런 목사. 워런 목사 제공

백화점 향수 코너에서 만난 젊은 여직원 앞에 그는 사영리 책자를 펼쳤다. 양쪽엔 영어와 한국어가 각각 적혀 있었다. 서로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은 손짓으로 의사를 나눈 뒤 각자의 언어로 사영리를 번갈아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기도문까지 읽고 고개를 들었을 때 점원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국에서의 첫 전도 체험은 이 청년에게 ‘믿음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50여년이 흘러 세계적 목회자가 된 청년이 서울을 다시 찾았다. 미국 새들백교회를 설립한 릭 워런(71) 목사다. 21세기 미국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워런 목사는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매주 평균 3만명 이상이 출석하는 새들백교회에선 8000여개의 소그룹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국민일보는 27일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워런 목사를 만났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서울총회 참석차 방한한 워런 목사는 1974년 당시 노방전도 사진을 공개하며 “복음은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역사한다는 걸 한국에서 배웠다”고 했다. 이어 “이제는 세계교회가 연합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마 28:19~20)을 완수할 때”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1974년 여의도 엑스플로 집회를 통해 어떤 변화가 있었나.

“전도는 내 능력이나 언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회심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일어난다. 복음은 언어를 넘어 마음과 마음을 잇는 사랑의 다리다.”

-WEA 서울총회를 통해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2033년까지 대위임령을 함께 완수하자는 요청이다. 2033년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대위임령을 주신 지 2000주년 되는 해다.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건 잃어버린 자녀들을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다. 앞으로 8년 안에 모든 인류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하나님께 드릴 최고의 선물이 될 거다.”

-그렇지만 한국교회와 미국교회는 연거푸 침체 중이다. 세계교회에 희망이 있나.

“통계만 따져봐도 희망이 있다. 2000년 이후 지난 24년 동안 세계 인구는 연 1%씩 증가했지만, 기독교인은 매년 2%씩 늘었다. 인구 증가보다 두 배 빠르게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건 교회의 ‘축소’가 아니라 ‘이동’이다. 교회의 중심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옮겨가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난 그 지역의 차세대 리더들을 세우는 데 힘과 시간을 쏟고 있다. 앞으론 남반구 교회들이 북반구와 서구 교회를 다시 복음화하게 될 것이다.”

-새들백교회 은퇴 이후 가장 관심을 두는 사역은.

“다음세대다. 남은 생애를 다음세대를 위해 드리기로 하나님 앞에 다짐했다. 근래 사도행전 13장 36절 말씀을 자주 곱씹고 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이 말씀은 신앙인으로서의 성공을 상징한다. 자기 세대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 나도 끝까지 다윗처럼 살고 싶다. 다음세대가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세대가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수님의 대위임령을 위한 동맹을 맺자. 그리스도인의 인생에 대위임령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 교회가 2000년이 지나도록 아직 대위임령을 완수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연합의 부족이다. 한국은 분단 이전부터 부흥을 경험한 국가다. 지난 50년간 한국은 나이지리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다. 우리와 다음세대가 대위임령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길을 이끌어 달라.”

이현성 장창일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