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MBTI의 ENTP 유형이고 P가 강해 정형화된 삶을 싫어한다. 그래서 멈춤보다 흐르는 삶을 선택했고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빌리온 소울 하비스트(BSH) 운동을 하면서 가장 거룩한 인생은 더 많은 일을 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장 박동에 잘 맞춰 살아간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라 화평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리듬이라는 질서 속에서 은혜를 흘려보내신다. 하나님의 리듬 안에 있으면 멈춤도 흐름이 된다.
주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거함(Abiding)의 비밀, 즉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음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붙어있음이라는 리듬의 통로를 통해 가장 잘 흐른다. 헬라어로 ‘거하다’(meno)는 말은 수동적 멈춤이 아니라 의도적인 습관, 일상화된 패턴을 뜻한다. 요즈음 용어로 ‘루틴’이다. 움직임과 흐름도 필요하지만 멈춤과 머무름도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고 거룩한 일상(Holy Routine)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홀리 루틴은 일상 속 영적 질서
의대생 시절 특강으로 오신 교회역사학자 민경배 교수의 간증을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민 교수는 세계 교회사를 연구하러 영국에 유학했다가 옆집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바로 짐을 싸서 귀국한 일화로 유명하다. 그분은 1차세계대전 영국군 참전 용사로 독일 포로들을 후방으로 이송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부하와 함께 포로를 이송하던 중 어느 교회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이때 포로가 결박을 풀고 도망가는 상황이 되었다.
이때 부하가 총구를 겨누어 그 포로를 쏘려는 순간 ‘아무리 적이지만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자에게 총을 쏴서는 안 된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결국 그 포로는 도망쳤는데 나중에 포로 이름을 수첩에서 확인하니 독일군 중사 아돌프 히틀러였고 한다. 민 교수는 그 상황을 두고 노인이 했던 ‘세계 역사가 바로 내 옆에 스쳐 가는 것을 보았다’는 탄식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후 민 교수는 자신이 연구할 분야는 바로 내 옆을 스치는 ‘한국 교회사’라는 생각에 귀국했다고 한다. 멈춤이 하나님의 리듬인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은 세계 교회사의 중심 이슈가 되었다. 이는 또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거룩한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루틴의 어원은 루트(route)인데 ‘매일 걸어가는 정해진 길’ 즉 삶의 리듬과 시간의 질서를 뜻한다. 그리고 한 개인의 삶을 유지시키는 습관적 구조이기도 하다. 심리학적으로 루틴은 결정의 피로도(decision fatigue)를 줄이고 일관성을 높이는 자기중심의 행동 양식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반해 홀리 루틴은 성령의 임재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리듬이며 일상 속에 하나님의 뜻이 흐르게 하는 영적 질서이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루틴의 원리를 세우셨다. 창세기 1장에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에서 창조 자체가 하나님의 루틴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만난 글로벌 리더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은 매우 분주했다. 문제는 분주함 자체가 생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 분주함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느냐, 하나님의 리듬에 순종하는 삶인가가 중요하다. 필자는 그분들에게 ‘은혜의 머무름’과 ‘사명의 움직임’을 함께 살아내는 기술인 홀리 루틴을 소개하고 싶다.
거룩한 일상에서 하나님 만나
필자는 코로나 팬데믹 시절 모든 게 막혔을 때 말씀을 묵상하다가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를 경험했다. 예배는 예배당이 아닌 하늘 보좌 앞에서 드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의대 교수 시절 연구 분야인 질병 역학(Epidemiology)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독특성과 팬데믹이 의미하는 바는 ‘심판의 예고편과 주님 재림의 임박성’이라는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았다. 팬데믹이 한창인 2020년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의 작은 기도 모임을 통해 BSH의 비전이 재점화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모두가 말씀 묵상과 연구, 기도모임 등 일상의 루틴을 통해 이루어진 열매이다.
성경은 거룩한 일상을 통해 인생을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매번 이동할 때마다 제단을 쌓았고 모세는 매일 진 밖의 회막으로 나아가 하나님과 대면했다. 다윗은 하루 세 번씩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졌다. 그들의 삶은 기적의 순간들이 아니라 ‘임재의 루틴’으로 구성된 시간이었음을 묵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매일같이 반복하는 말씀묵상과 기도, 감사, 예배, 섬김 등의 루틴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며 우리의 시간 속에 들어오신 성령의 리듬이다. 하루를 주님과 함께 시작하고 주님 안에서 마무리하는 사람은 이미 천국의 리듬 안에 사는 셈이다.
필자가 대학 시절 성경을 보다가 충격을 받은 구절이 있다.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 5:15~16)였다. 사랑의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에 주린 군중과 불쌍한 환자들을 외면할 수 있을까. 그것은 홀리 루틴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거룩한 일상의 리듬을 잃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에게서 도망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돌아가 깊은 친밀감을 회복하셨다.
이는 다니엘 6장 10절의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는 말씀과 연결된다. 핵심은 ‘전에 하던 대로’이다. 그는 ‘자기 집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며 감사하는’ 홀리 루틴의 세 기둥을 제시한다. 이는 공간의 거룩화, 방향의 정렬, 시간의 규칙성이다.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일관성을 의미한다.
하나님 사람들은 거룩한 루틴 있었다
필자가 특별히 주목하는 성경 인물은 모세와 바울이다. 모세는 광야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루틴으로 구조화했다. 그는 조용히 진 밖으로 나가 천막 하나를 세웠다. 그곳은 회막(會幕)으로 만남의 장막이었다. 모세는 매일 같은 발걸음, 같은 시간, 같은 자리였지만 주님은 매번 ‘친구와 대화하듯’ 말씀하셨다. 이것이 모세의 홀리 루틴으로 일상의 리듬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 성령의 리듬이 이스라엘 전체의 방향을 바꿨다. 조용한 회막 하나를 세운 것이 결국 이스라엘의 영적 중심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회막을 떠나지 않음으로 세대를 잇는 임재의 루틴이 계승되었다. 사도바울은 ‘절대기쁨, 절대감사, 절대찬송’의 홀리 루틴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는 수많은 역경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줄기차게 기도와 찬송으로 나아갔으며 범사에 감사했다. 문제가 생기면 생길수록 기도하고 찬송하고 감사했다.
조지 뮬러는 믿음의 루틴을 정립한 산 모델이다. 그는 60여년 동안 고아 1만명 이상을 먹이고 가르쳤는데 평생 5만번 이상 기도 응답을 받았고 그중 3만 번은 기도하자마자 응답된 것들이었다. 그의 신앙은 믿음의 실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증명이었다.
유명한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다. “조지 뮬러의 삶을 본 후에야 나는 ‘믿음의 선교(Faith Mission)’를 믿게 되었다.” 인도 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의 루틴은 사랑이었다. 새벽 4시의 기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중보, 매일 밤의 감사가 50년간 자립형 신앙공동체를 유지했고 그 사랑이 3000명 이상의 아이들을 살렸다.
그녀가 세운 도나버공동체는 지금도 인도 남부에서 고아와 여성, 미혼모들을 품고 있다. 특히 64세 때 심한 낙상으로 20년간 거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녀의 사역은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됐다. 그녀는 병상에서 글쓰기 루틴을 시작했는데 그녀의 펜 끝에서 30여권의 고전이 탄생했다. 놀랍게도 카마이클은 병상에서도 기도 독서 글쓰기 감사의 루틴을 유지했는데, 몸은 움직일 수 없었으나 영혼은 날개를 달고 더 넓은 사랑의 공간을 확보했다.
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 빌 브라이트의 루틴은 순종이었다. 그는 말씀묵상과 기도는 물론 금식도 정례화했다. 무엇보다 ‘즉각적 순종’이라는 루틴을 통해 엄청난 열매를 맺었다. CCC는 현재 200개국에서 2만5000명의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는데 금식 루틴과 순종 루틴을 통해 복음의 세계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마지막 때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왕의 귀환(Great Return)(계 22:20)과 위대한 지체(Great Delay)(벧후 3:9) 사이의 거룩한 긴장(Holy Tension)이다. 주님 재림의 임박성과 준비성 사이의 긴장이다. 주님은 곧 오신다. 그러나 교회는 준비되지 않았다. 이 두 현실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이 흐른다. 그 긴장 속에 성도의 사명이 있다.
그래서 주님은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 하시면서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라”(마 24:45)고 명령하신다. 핵심은 재림의 임박성을 어떻게 홀리 루틴으로 전환시키는가이다. 만약 주님이 내일 오신다면, 일주일 후 오신다면, 그리고 1년 후 오신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꿀 것인가. 만약 10년 후 주님이 오신다면 우리는 어떤 루틴으로 그분을 맞이할 것인가. 홀리 루틴은 거룩한 긴장 속에서 왕의 귀환을 준비하는 삶의 리듬을 찾는 여정이다.
마지막 시대에 주님은 빨리 움직이고 계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움직임에 맞추어 가는 것이 홀리 루틴이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그러나 깨어 있는 사람만이 그 하루를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로 바꾼다. 이번 주 한반도에서는 두 개의 큰 복음 축제가 열린다. WEA와 GHS의 글로벌 콘퍼런스는 각각 ‘복음 전파’와 ‘영혼 대추수’라는 가치로 예수님의 부활 승천 2000주년인 2033년까지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하자는 공통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전 세계 성도들의 홀리 루틴을 연결해 충만한 임재의 스토리로 풀어내어 우주적 클라이막스인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리허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