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세 여인의 시대적 초상

입력 2025-10-29 02:11
사진작가 김옥선 개인전 ‘옥선 혜림 인선’에는 주인공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풍부한 자료 사진이 함께 전시됐다. 왼쪽부터 ‘남장 정치인’ 김옥선의 총선 유세 장면, 1961년 한복 차림의 문혜림, 새 인생 동반자와 함께한 재독 간호사 김인선(오른쪽). 작가 제공

중견 사진작가 김옥선(57)은 대학을 다니던 시절, 교수들로부터 “너 정치인 김옥선을 아니?”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1970∼80년대 제7·9·1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옥선(91)은 ‘남장 여성 정치인’으로 유명했다. 1992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김영삼, 정주영 등과 함께 나란히 후보로 등장하기도 했다. 전업 작가가 된 그가 마침내 자신과 동명의 정치인 김옥선을 다루는 개인전을 서울 도봉구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갤러리에서 한다.

정치인 김옥선과 함께 근대 민주화·산업화 시대를 통과해온 다른 두 명의 여성도 불러내 시대적 초상을 만들어냈다. 미국인 문혜림(본명 헤리엇 페이 핀치백 문·1936~2022), 재독 간호사 김인선(74)이 그들이다. 그래서 전시 제목은 ‘옥선 혜림 인선’.

양복을 입는 남장 정치인 김옥선은 철이 들면서부터 남성 젠더를 수행하며 평생을 살았다. 일제강점기 징용에 끌려간 오빠가 행불된 후 자신에게 아들 역할을 기대한 모친의 바람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포목상을 하는 모친의 지원으로 18세에 전쟁 미망인과 고아를 위한 모자원을 설립했고 중·고교도 세웠다. 하지만 가부장 사회는 그를 남장 정치인으로만 기억했고, 교육자·사회사업가의 이미지는 거세했다.

한복 차림이 단아한 백인 이주 여성 문혜림은 1950년대 미국에 유학 온 문동환 목사(문익환 목사 동생)와 결혼한 후 1961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민주화운동을 하며 경기도 동두천에 기지촌 여성을 위한 공간 두레방을 운영했다. 재독 간호사 김인선은 동성의 동반자 이수현을 만나 인생 2막을 새롭게 살면서 함께 이주민을 위한 호스피스를 운영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 김옥선은 “젠더 관점을 넘어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들 세 여성을 다루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김옥선이 세 여성의 초상을 기록하고 전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신선하다. 직접 찍은 사진도 있지만, 기록 사진과 일기, 선거 포스터 등 다양한 기록 매체가 더해졌다. 주변 사람의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상까지 더해져 사회가 외면한 나머지 반쪽 초상까지 진정성 있게 살려낸다. 11월 1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