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 매사추세츠 언덕의 웨슬리신학대학원. 이 학교 교정엔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가 손에 성경을 든 채 말을 타고 있는 형상의 동상이 있다. 동상의 웨슬리 시선은 백악관 쪽과는 정 반대 방향이다. ‘세계는 나의 교구’를 외치던 웨슬리의 선교적 열망을 반영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상과 관련돼 이 학교엔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1960년대 후반 한국인 유학생 한 명이 매일 자정과 새벽에 동상 밑에서 기도했다는 일화다.
주인공은 당시 공군 군목으로 활동하다 유학 온 김선도 목사다.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유학길에 올랐고 신학교에서는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공부에 전념했다. 웨슬리 동상 밑에서 기도하며 공부에 매진한 그는 한국과 세계를 향한 목회와 선교를 꿈꿨다.
국민일보는 최근 웨슬리신학대학원을 방문해 김 목사의 흔적을 찾았다. 맥알리스터 윌슨 총장은 “김 목사는 한국 기독교 영성을 소개했다. 그의 영향으로 학교에 새벽기도회가 생길 정도였다”며 “김 목사는 교수진과 학생들에게 한국적 신앙을 보여줌으로써 이 신학교가 세계를 향해 나아가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김 목사의 제자이자 학교 부총장인 신경림 교수도 “가족을 한국에 두고 홀로 유학을 떠난 김 목사님은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그의 기도하는 모습을 본 다른 학생들도 기도를 따라 할 정도였다”고 했다.
웨슬리신학대학원은 미국 감리교(UMC) 소속 13개 신학교 중 하나로 1882년 설립됐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인 목회자들이 공부했으며 해마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김 목사는 석좌교수로도 활동했다. 국제이사를 맡고 있는 김정석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은 미래 목회자 육성을 위해 매년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출신 목회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선도 목사의 열정과 선교 비전은 미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켄터키주 윌모어의 애즈버리신학교가 대표적이다. 이 신학교는 웨슬리안 전통을 따르는 복음주의 학교로 세계에서 가장 큰 신학교다. 현재 전 세계 44개국 출신 16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1923년 개교한 이 신학교에서 김선도 목사는 21년간 이사, 전도 및 실천신학 석좌교수로 활동했다. 학교는 이를 기념한 기숙사를 건축하고 ‘김선도 홀(Sundo Kim Hall)’로 명명했다.
신학교는 여전히 김 목사의 실천적 영성과 신학, 그의 열정이 숨 쉬고 있었다. ‘김선도 전도학’과 ‘비슨(Beeson) 과정’이라 불리는 목회학 박사(DMin) 과정이다. 김선도 전도학 담당 필립 메도즈 교수는 “김 목사에게서 보고 그에 대해 읽고 광림교회에서 목격한 것은 그가 단순히 말씀의 선포나 영혼 구원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선교를 선포와 섬김, 돌봄이 함께 이루어지는 전체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태도였다”면서 “김 목사의 어휘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한 단어가 있었다. 봉사였다. 그렇다. 우리는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 복음은 봉사와 함께 오며 봉사를 통해 들린다”고 말했다.
비슨 과정 담당 토머스 텀블린 교수는 “김선도 목사에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볼 수 있는 시각,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었다”면서 “그는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웃을 사랑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일관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애즈버리신학교 도서관에는 김선도 목사의 다양한 저서도 소장하고 있었다. 영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은 ‘상처가 영광이 되게 하라(Hurt turning into glory)’라는 설교집이다. 텀블린 교수는 “책의 면면에 흐르는 그의 목회적 열정은 미국의 많은 목회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캔자스주 캔자스시티 리우드 부활의교회 애덤 해밀턴 목사야말로 김선도 목사의 목회와 사명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 목회자다. 해밀턴 목사는 1990년 장례식장을 빌려 교회를 시작해 지금은 2만여명의 성도가 출석하는 대형교회를 일궈냈다. 독특한 것은 이 교회 예배당 전면에 설치된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에 김선도 목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가로 28m, 세로 10m 크기로 161개 조각을 연결해 제작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왼쪽은 성경 역사와 구약 인물을, 오른쪽은 신약 인물과 교회 역사 속 인물을 배치했다. 해밀턴 목사는 “김 목사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자신의 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닮도록 돕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목회 모델이었다”고 말했다.
워싱턴DC, 윌모어, 캔자스시티=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