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마다 내년 사역 준비로 분주한 시기다. 코로나19 즈음부터 한국교회에는 가을부터 내년도 사회와 교회의 동향을 다각도로 접하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 사역을 준비하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대표적인 자료는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2022년부터 매년 발행한 ‘한국교회트렌드’다. 2026년도를 전망하면서 열 개 키워드를 제시했고, 그중 가장 관심이 가는 항목은 무엇인지 목회자들에게 물어봤다. 여론조사 결과 압도적인 관심이 ‘서로 돌봄 공동체 세우기’에 몰렸다.
돌봄은 우리 귀에 익숙한 주제다. 사회에서도 많이 논의되고 정부도 중요한 의제로 설정하고 있다. 교회들도 마을 목회를 강조하고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면서 사회를 돌보고 섬기는 일에 열심을 기울여 왔다. 이번 주제는 이런 사역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교회 안에서 먼저 서로 돌보는 관계가 형성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돌봄의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전통적인 공동체들, 대가족과 마을 등이 해체되고 핵가족화를 넘어 핵개인화로까지 가는 흐름이다. 또 사회에서의 경쟁은 날로 격화되는 상황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몰고 올 급격한 변화와 양극화 현상 앞에서 불안과 탄식은 더 깊어질 것이다.
교회는 어떤 상태에 있는가. 공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출발한 사회 참여 의지가 정치 과잉시대를 만나 길을 잃고 말았다.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실천을 강조하거나 선교적 봉사를 강조하는 목소리 역시 필요한 일이나 지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예수님은 죄인을 먼저 품어 주시고 용납해 주시고 연약한 자들을 돌봐 주셨다. 그 사랑과 돌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힘을 공급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는 말씀은 교회가 서로 돌봄의 공동체가 되지 않고는 선교적 돌봄을 실행할 수 없다는 진리를 분명히 보여 준다.
그렇다면 누가 돌볼 것인가. 전통적인 목회 패러다임에서는 목회자가 성도들을 돌보는 사역을 담당했고 최근에는 훈련받은 전문상담가들이 치유사역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계속해서 강화해 가야 할 중요한 사역이지만 이 패러다임의 한계는 분명하다. 목회자는 이미 많은 사역에 지쳐 있으며, 교회가 끊임없이 상담센터를 늘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목회자나 전문상담가 중심의 사역은 돌봄의 제공자와 수혜자로 나누는 이분법에 빠질 수가 있다. 이 구도에서 성도들은 수동적인 소비자가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잠재적인 역량이 있다. 교회는 그 잠재력을 계발하고 실천하는 장이 돼야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이 돌봄의 성품을 갖추게 되고, 교회에 돌봄의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그렇게 변화된 성품과 문화가 그리스도인을 좋은 이웃으로 살게 하고 교회를 세상의 빛 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또한 자각해야 한다. 목회자야말로 가장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가정에서 주된 돌봄 제공자인 엄마들이 가장 돌봄이 필요한 대상인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에는 헌신이라는 미명하에 자기 돌봄의 필요를 간과해 온 탓도 있다.
필자 교회에서는 돌봄을 위한 양육과정을 필수로 이수하게 하는데 첫 시간의 주제가 자기 돌봄이다. 신실하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섬기고 가족을 돌보느라 얼마나 자기 돌봄에 등한시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필자는 요즘 목사님이나 사모님, 선교사님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있을 때 자기 돌봄의 필요성을 말하려고 노력한다. 반응이 뜨겁다. 지난 7월 미주 코스타에서 자기 돌봄을 주제로 강의를 개설했는데 신청 사이트를 열자마자 마감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교회에서 단련한 자기 돌봄과 서로 돌봄의 근육은 밖으로 나가 선교적 섬김과 창조세계 돌봄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돌봄은 가장 성경적이면서 포괄적이고, 가장 실천적이면서 시급한 주제다. 시대의 요구가 돌봄으로 분출하고 있는 징후는 분명하다. 돌봄의 관계를 가꿔 가고 돌봄문화를 세워가는 일은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며 교회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길을 잃었다고 느끼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는 한국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역이기도 하다.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