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감 주는 무분별한 현수막
권력 가졌다는 과시만 그득해
일반 시민에게는 금지됐지만
정치인만은 거리낌 없는 특권
염치·자제 없이 맘껏 누리니
믿고 따를 사람 누가 있을까
권력 가졌다는 과시만 그득해
일반 시민에게는 금지됐지만
정치인만은 거리낌 없는 특권
염치·자제 없이 맘껏 누리니
믿고 따를 사람 누가 있을까
출근길에도, 점심 식사 길에도, 퇴근하면서도 억지로 읽어야 하는 정당 현수막 때문에 화가 난다. “오늘은 하늘이 맑네” 하며 고개를 들었다가 불쾌감을 주는 시뻘건 글자에 눈길을 돌린다. 횡단보도 신호등 위,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 하필 꼭 봐야 하는 곳에 걸어놓았다. 형식이 무례한 만큼 내용은 거칠다. 상식에서 벗어난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 거의 배설 수준이다. 나는 시원하게 뱉었으니 감정은 보는 사람이 알아서 추스르라는 식이다.
추석 연휴는 최악이었다. 행세 좀 한다는 사람은 예외 없이 내걸었다. 국회의원, 무슨 당 당협위원장, 구청장, 구의회 의장과 무슨 상임위원장, 있는지도 몰랐던 직능단체 회장까지. 명절 인사를 가장한 정치 슬로건을 하루종일 읽어야 했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부근, 교차로는 물론이고 주변 가드레일까지 빼곡했다. 현수막을 건 사람은 흐뭇했을까. 자신의 이름이 동네 곳곳에 휘날리니 뿌듯했을까.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모두 싫다고 했다. 저런 게 정치라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 정치인이라고 공감했다. 명절만이 아니다. 2주가 지난 지금도 갯수만 조금 줄었을 뿐 달라진 건 없다. 곧 연말이 되고, 설연휴가 찾아오고, 지방선거가 시작될 테니 현수막이 주는 불쾌함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정당이 합법적으로 현수막을 게재하는데 괜한 불만을 터뜨린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홍보 방식’ ‘환경 오염의 주범’ 같은 뻔한 소리는 그만하라고 질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당 현수막에는 그런 것과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가 담겨 있다. 바로 특권 의식이다. 일반 시민에게는 금지된 불법 행위지만 ‘나는 권력이 있으니 해도 된다’는 과시가 정당 현수막의 본질이다. 오랫동안 전시회를 준비한 예술가도 횡단보도 위에 현수막을 걸면 과태료 500만원을 내야 한다. 건물주가 자신의 건물에 현수막을 내걸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치인은 예외다. 2022년 5월 옥외광고법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만 좋도록 법을 바꿨으니 전국이 현수막 공해에 시달린다. 오죽하면 외국인들이 보면 부끄러우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경주에서만큼은 정당 현수막 게재를 자제하자는 간곡한 요청이 나왔을까.
현수막은 비용 대비 광고효과가 좋다. 가성비가 최고다. 그런데 여태 이 좋은 홍보수단을 관이 독점했다. 지금도 공원의 가장 큰 쓰레기는 구청에서 내건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현수막이다. 등산로마다 걸린 ‘산불조심’은 되레 불쏘시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모든 현수막이 불법인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예외다. 정책을 알린다는 취지인데, ‘무지한 백성을 바로잡겠다’는 관 우월주의와 특권 의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정치권이 이런 구시대적 규제를 용납할 리 없었다.
그런데 방향을 잘못 잡았다. 시민 정서와 도시 미관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관리들이 가진 그 특권 나도 가져야겠다”며 밀어붙였다. 그렇게 정당 현수막은 불법에서 합법이 됐다. 무분별한 현수막에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자 마지못해 자율 규제에 나섰지만 시늉으로 끝났다. 그들이 한번 획득한 특권을 포기할 리 없다는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국회에는 현수막 공해 해결을 위해 ‘국회의원을 보유한 정당’ 또는 ‘직전 대선에서 전국 유효투표의 1% 이상을 득표한 정당’에만 현수막 게재를 허용한다는 정당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특권을 버릴 수 없으니 수혜자를 줄여 비난을 덜 받겠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가진 자의 논리다.
언제부턴가 국회는 특권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됐다. 국회의원의 각종 특권은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보장한다는 군사독재 시절 시민들의 동의에 기반한다. 그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는데 그때의 특권은 아직 남아있다. 과거에는 특권 자체를 염치 없다고 여기고,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을 때 꼭 한번만 쓴다고 스스로 자제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저하지 않고 늘 활용한다. 있을 때 마음껏 누리고, 없으면 새로 만든다. 게다가 특권에 취했다고 서로 손가락질한다. 그러니 상임위원장이 국정감사 기간 중에 국회 안에서 딸 결혼식을 치르고 피감기관으로부터 축의금을 받을 생각을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법으로 보장된 특권을 사용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초등학생도 그 질문의 답은 알고 있다.
고승욱 수석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