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덕 (19)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한다” 24시간 RUN 극한 도전

입력 2025-10-29 03:04
심재덕 선수가 2016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24시간 울트라 러닝 대회에서 달리고 있다.

달리기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동시에 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한계는 없다.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한다.’ 그 좌우명을 가슴에 새기며 아직 가보지 않은 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가기로 했다.

5주 연속 대회에 나서며 몸은 이미 한계에 닿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24시간 주(走)’라는 이름의 극한 대회에 마음을 빼앗겼다. 세상에는 별의별 대회가 다 있다. 국제 울트라러닝협회(IAU)에서 감독하는 최장거리 대회, 온종일 쉬지 않고 달리는 경기. 도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 2016년 여름, 나는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풀코스와 울트라, 산악마라톤까지 잇따라 우승하며 ‘폼’은 최고조였다. 연습을 제외하고 대회만 496㎞를 달렸다. 몸이 고통을 기억할 틈도 없었다.

문제는 회복이었다. 1주일 전 TNF100(100㎞ 트레일런)에서 우승한 직후였다.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목적지는 중국 광저우, 섭씨 35도와 습도 90%의 열대 도시였다. 해가 져도 공기가 식지 않았다. 숨이 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 24시간을 달린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내겐 또 하나의 실험이었다. 최악의 조건에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그 끝을 보고 싶었다.

세계 상위순위자 12명을 초청한 제1회 국제 24시간 대회였다. 나는 한 번도 24시간 경주를 뛴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초청장을 받았다. 각종 울트라 대회에서의 성적 덕분이었다. 주최 측에는 예상 기록을 260㎞로 제출했다. 실제로는 240㎞ 이상을 목표로 삼았다. 초청선수에게는 항공권과 숙소 식사 통역이 제공됐다. 비용 부담은 없었지만 그만큼 책임이 따랐다.

코스는 광저우 영화세트장 안에 마련된 1.2㎞ 콘크리트 트랙이었다. 단조로운 순환코스를 수백 바퀴 돌아야 했다. 통역을 맡은 한국어 전공 대학생이 “파이팅”을 외칠 때마다 힘이 났다. 하지만 몸의 열기와 피로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새벽이 와도 기온은 내려가지 않았고 신발 속에서 땀이 쏟아졌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물을 마셔도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약 누가복음 속 부자가 ‘나사로를 보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할 만큼 목은 타들어 갔다.

정신력도 흔들렸다. ‘지금 멈춰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는 유혹이 반복됐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고 되뇌었다. 단순한 근성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에 가까웠다. 인간의 힘이 다한 자리에서 주의 손길이 내 발을 밀어주셨다.

결국 24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한계를 넘었다. 누적 거리 211.6㎞, 종합 3위. 목표했던 240㎞에는 못 미쳤지만 경기장을 떠나는 순간,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인간의 한계는 정해진 값이 아니라 믿음으로 다시 써 내려가는 방정식이라는 것을.

그해 나는 잡지 ‘사람과 산’이 제정한 ‘탐험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상보다 값진 건 깨달음이었다. 한계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신 또 하나의 기도 자리다.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