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가장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간 수술실에서 개복수술 후 12시간 만에 사망했다. 전공의 파업이 한창일 때라 병원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환자의 기저질환 때문인지 명확지 않다.
이대로 재판에 가서 진료기록감정을 한다면 의료과실이 있다고 나올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감정 결과 의료과실이 있는지에 따라 손해배상금도 큰 차이가 난다. 또 최근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의료감정 절차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재판 진행 전에 의료 전문 조정위원을 참여하게 해 재판의 향방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원고·피고 양측이 동의해 의료전문 조정위원을 모시기로 했다.
법원에 상근하는 의사 선생님이 계시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외과 전문의 선생님을 섭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사실 외부에서 전문 조정위원을 모셔오는 것은 조금 복잡하다. 생업이 있는 만큼 미리 일정을 확인해 조율하고, 소송기록도 복사해 보내야 한다. 법원에서 지급되는 수당이 미미하기 때문에 완곡하게 거절하는 분들도 드물지 않다.
일단 법원의 외부 조정위원 명부를 뒤져봤다. 다행히 대학병원에 현직으로 근무하는 외과 교수님이 계신다. 전화로 내용 설명을 하자,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교수님, 조정 진행은 제가 다 할 거니까 걱정 마시고요. 오셔서 의학적인 부분만 자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쁘신데 이렇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오실 수만 있다면 저희로서는 너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네. 그렇다면 참여하겠습니다. 조정하는 날에 뵙겠습니다.”
함께 진행한다는 말에 안심한 듯싶었다. 드디어 오늘, 교수님과 조정시간보다 조금 일찍 만나 미리 견해를 듣고 조정을 어떻게 진행할지도 상의했다.
“당사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일방적으로 제 의견을 말하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질문을 듣고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하면 어떨까요?”
“네. 좋습니다. 아무래도 환자분이 사망한 사고인 만큼 유족분들이 민감하실 수 있지요. 말씀하신 방식대로 하고, 원고와 피고가 따로 말할 수 있도록 자리도 분리하겠습니다.”
유족 중 한 분과 원무과 직원도 동석한 조정 자리는 원만하고도 충실하게 진행됐다. 유족분과 원고 변호사님이 의료 전문 조정위원에게 많은 질문을 했고, 전문 조정위원은 상세하고도 명확하게 잘 답변해 줬다. 병원 쪽에서는 많은 질문은 하지 않았지만, 병원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금액과, 보험 처리를 할 수 있는 한도액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수술 후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게 돼 유족들의 슬픔과 충격이 무척 크실 것 같습니다. 저희도 마음이 안타깝고 그만큼 판단이 어려운 사건인데요. 병원의 손해배상이 인정될지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오늘 나눈 말씀과 의료자문 결과를 종합해서 조정권고안을 보내드릴 테니 잘 검토해봐 주십시오.”
양측은 고개를 끄덕였고, 서로 고생하셨다는 인사로 조정이 마무리되었다.
민사조정법은 당초 3인의 조정위원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를 원형으로 설계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정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이유로 조정위원 1명이 책임조정방식으로 조정을 진행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건설, 의료, 지식재산권 등 전문분야 사건의 경우 법률가와 전문분야 조정위원이 함께 참여해 협업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특히나 오늘같이 무겁고 어려운 사건의 경우 합의재판부처럼 다수의 조정위원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조정안을 고민하는 모습이 당사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