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계획대로 척척 나아가는 지름길은 알려주지 않겠다는 듯 온갖 우여곡절이 딸린 갈림길을 던져준다. 신나는 일보다 찡그릴 일이 많기에 저마다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는 세상살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먼저 웃음 짓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도 언제 어디서나 먼저 웃음을 보이는 친구가 있다. 처음엔 ‘속도 없지, 어찌 저리 천진난만할까’ 싶었는데, 그와 오랜 시간 교류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친구는 나를 향해 웃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자주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처한 상황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며 푸념하면서도 여느 때처럼 생긋 웃는 친구를 보며 그의 웃음에 항상 따라붙는 ‘먼저’라는 단어에 궁금증이 생겼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미안하다 말하고, 먼저 웃어 보일 수 있는 마음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지.
나는 막연히 세상에 대한 신뢰, 자기 삶을 향한 애정일 거라고 유추했다. 아직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와 믿음, 상대가 벽을 세우더라도 경계를 풀고 다가가는 온정 같은 것.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친구의 웃음은 기분을 드러내는 표정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우러나온 거구나 하고. 다음 날부터 일상을 탐색했다. 전통시장에서, 번화가에서, 버스에서, 카페에서 먼저 웃음 짓는 이를 더러 목격했다. 과장된 몸짓이나 유쾌한 말을 하지 않아도 주변 공기를 산뜻하게 정화하는 그들의 웃음은 사회에서 학습한 친절함과는 결이 달랐다. ‘안심하라’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괜찮다’라는 말을 건네는 듯했다. 먼저 웃는 그들에게서 살 만한 세상이라는 포근한 위안까지 받았다.
웃음으로 고단함을 털어내고, 삶의 색채를 바꿔온 친구는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웃으면, 세상도 나에게 웃는다는 걸. 웃을 일이 없어도 입꼬리를 올려보려 한다. 나에게,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먼저 방긋 웃음 짓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