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산업 AI로 재편 중… “지금이 도약 골든타임”

입력 2025-10-29 02:45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협회 회관에서 열린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공

산업 전반에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분기점을 맞고 있다. 1945년 ‘조선약품공업협회’로 출범한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창립 80주년을 맞아 AI 중심의 산업 재편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핵심 비전으로 내세우며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협회 회관에서 열린 창립 80주년 기념식은 한국 제약·바이오의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상징적인 자리였다. 윤웅섭 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은 “지금이 제약바이오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며 “연구개발(R&D) 투자가 혁신과 국부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협회는 이날 ‘비전 2030’을 선포하며 R&D 투자 비율 15% 확대, 연매출 1조원 이상 신약 5개 창출, 글로벌 50대 제약사 5곳 육성, 해외 매출 비중 50% 확대, 필수의약품 100% 자급화 등을 중장기 목표로 제시했다. 산업 성장에 그치지 않고 제약바이오를 ‘국가 핵심 주력산업’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이러한 비전을 뒷받침할 핵심 인프라로 협회는 새롭게 조성된 ‘미래관’을 공개했다.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상징하는 이 공간에는 AI 신약연구원, AI 신약개발 자율주행연구실(SDL·Self-Driving Lab), 스마트 오피스가 들어섰다. 연구자들이 AI 기반 실험을 직접 설계하고 데이터를 즉시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현장형 AI 인재 양성의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AI 신약개발 자율 실험실(SDL)은 오는 12월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AI와 로봇을 결합해 수천 가지 성분 조합을 자동 분석하는 차세대 연구 시스템이다. 산업계의 실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전망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SDL은 기존 수작업 대비 신약개발 속도를 최대 100배까지 단축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통해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진입까지의 기간을 크게 줄이고,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실패 위험을 동시에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협회는 범부처가 참여하는 ‘연합학습 기반 신약개발 가속화 프로젝트(K-MELLODDY)’에도 참여하며 한국형 오픈이노베이션 모델 구축을 주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인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은 기존 AI 학습 방식보다 보안성과 효율성이 높다. 데이터를 외부로 이동시키지 않고 각 병원·연구기관 내에서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민감한 임상·환자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으면서도 고도화된 신약개발 분석이 가능하다.

업계는 AI가 시간과 인력의 한계를 보완한다면 블록버스터 신약 창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은 현재 신약 후보물질 3233개를 보유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췄다”며 “AI와 우수 인재의 유입이 맞물리는 지금이야말로 글로벌 빅파마와의 격차를 좁힐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협회는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산업의 역사와 혁신 여정을 담은 ‘신약개발 스토리북’과 ‘AI 신약개발 교과서’도 발간할 예정이다. 노연홍 제약바이오협회장은 “이는 모두 지난 80년을 성찰하고, 다가올 100년을 위한 책임을 새기는 동시에 비전을 담아내고자 하는 과정”이라며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혁신과 신뢰, 그리고 상생의 가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도 제약·바이오를 국가 신성장축으로 명확히 규정하며 전폭적인 지원 의지를 드러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바이오 혁신 토론회’를 열고 업계 의견을 직접 청취했다. 보건의료 R&D 예산은 사상 처음 1조원대로 증액했다. 정부는 또한 AI·바이오·문화콘텐츠·방산우주항공·에너지(AI·Bio·Contents·Defense·Energy)를 포함한 ‘ABCDE 5대 미래산업’에 바이오산업을 포함시키며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 확대 방침을 밝혔다.

다만 10조원 규모의 미래산업 예산 중 제약·바이오 분야에 투입되는 금액이 약 2조원 수준에 그치면서, 실질적인 R&D 지원과 예산의 선택·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 회장은 “정부의 관심은 반가운 일이지만, 빅파마를 따라잡기 위해선 R&D 중심 기업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