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칼럼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민화에서 유래한 호랑이 캐릭터 ‘더피’ 열풍을 보며 K컬처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이를 계기로 전통 예술을 향유하고, 새롭게 조명해보기로 마음먹고 보니 꽤 많은 공연과 전시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15일부터 열흘간 서울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펼쳐진 ‘대한민국 국악관현악축제’는 놓칠 수 없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등 대표주자들을 비롯해 전주, 강원, 청주 등 지자체 산하 10개 단체의 무대를 한번에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축제’ 형식으로 진행돼 상대적으로 저렴한 티켓값에, 저마다 검증된 대표 레퍼토리를 들고나와서인지 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했다. 지난 22일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은 중국 지휘자 쉬쯔준의 지휘로 우즈베키스탄, 몽골,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민요를 모티브로 한 협주곡들을 선보였다. 한국 작곡가들이 창작한 우즈베키스탄의 악기 깃제크 협주곡 ‘기류’, 몽골의 뿔피리 협주곡 ‘사막의 별’에 쉬쯔준이 작곡한 비파협주곡 ‘고도수상’까지 각국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과 같은 음악의 향연이 펼쳐졌다. 다른 나라 음악들 사이에서 한림이 연주한 박범훈의 아쟁 협주곡 ‘정철호류 아쟁산조’를 듣다 보니 국악의 매력이 한층 극대화됐다.
마지막 공연인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무대는 표를 못 구한 사람들이 속출했다. ‘슈퍼밴드’ 출연으로 익숙한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이 ‘비밀의 정원’ ‘거문장난감’을 들려줬는데, 말 그대로 거문고를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그의 천재성을 통해 국악의 현대적 매력이 한껏 빛났다. 서도밴드의 ‘뱃노래’ 등을 국악관현악으로 새롭게 편성해 선보인 서도의 무대도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사실 그동안 문화예술계에서 ‘국악관현악단’은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1960년대 국가권력의 주도로 국악관현악이 시도됐고, 80년대 지자체마다 앞다퉈 산하 단체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독주에 적합한 국악기들을 서양의 오케스트라처럼 배치하고 지휘자를 세워 연주하는 시도는 음악적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매번 어설픈 국악의 현대화, 서구화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지난 60년 시행착오가 어느덧 결실을 거두는 단계로 진입한 듯하다. 악기 따로, 곡 따로 혹은 악기끼리 어울리지 않는다는 논란이 필요 없을 만큼 국악관현악단에 어울리는 다양한 창작곡을 내놓는 신진 작곡가들이 등장했다. 무엇보다 21세기 한국 문화의 흐름 속에서 자유롭게 국악을 만들고 즐기는, 실력이 쟁쟁한 젊은 연주가와 소리꾼이 넘쳐난다. 일제 식민시절과 70~80년대 서양 주류 문화를 받아들이며 문화 콤플렉스를 지닌 기성세대와 달리 이미 선진국인 한국에서 태어나 ‘국악은 힙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국악 현대화니, 대중화니 하는 논란 자체가 어쩌면 올드하게 느껴질지 모를 일이다.
서울대 김정은 명예교수는 이번 공연 10개 중 6개 공연을 즐겼다. 2017년 우연히 ‘북촌한옥음악회 북촌낙락’에서 국악이 예전에 알던 올드한 음악이 아니고 새로운 것임을 깨달은 놀라운 경험을 계기로 국악 애호가가 됐다고 한다. 그는 “관객 입장에서 지난 10년간 국악관현악이 많이 발전했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젊은 국악인들의 역할이 컸던 것 같다”며 “이들에 대한 지원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길 바란다”고 했다.
국악을 하는 사람도, 즐길 사람도 준비가 됐다. 남은 건, 이들이 설 무대를 많이 만들고 누구나 국악이 이토록 새로운 음악임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계륵 같았던 국악관현악단이 ‘K음악’의 정수를 해외에 알리는 무엇보다 좋은 매개체가 될 가능성을 이번에 확실히 봤다.
김나래 문화체육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