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A씨는 최근 민원인으로부터 증빙서류도 없이 수당 신청을 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수차례 거절하자 민원인은 “고소하겠다”며 행패를 부리고 모욕적 언사도 퍼부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상관까지 응대를 잘못한 것 아니냐며 다그치자 A씨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법적 대응까지 고민했지만 기관부터 소극적이라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지난해 5월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대책을 내놓은 지 1년이 지났지만 악성민원에 적극 대응하는 조치는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공기관은 관련 통계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27일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악성민원(폭언·협박·성희롱·폭행·기물파손 등)은 3만4019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법적대응은 3.7%(1283건)에 그쳤다. 특히 고소·고발은 각각 50건(0.15%)과 48건(0.14%)뿐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대책을 발표하며 위법행위에 대한 기관 차원의 고발을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민원인의 위법행위 및 반복민원 대응지침에도 행정기관이 주체가 된 우선적 법적 조치가 명시됐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은 더 큰 사각지대다. 민원처리법 등 관련 대책에는 공공기관도 포함돼 있지만 행안부는 기관 자율성이나 소관 부처 핑계를 대면서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중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서울교통공사 등 대민 업무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적지 않다. 한 공공기관 직원 B씨(33)는 “악성민원을 종종 겪지만 참는다”며 “기관이 법적 조치를 하거나 도와주는 지침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공공기관까지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공공기관까지 지침은 전파가 된다”며 “소관 부처에 권고하는 등의 방향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실질적인 대응 체계 구축을 위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