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고 또 위로하며”… 홀로 된 사모들, 믿음의 동행 이어가다

입력 2025-10-28 03:07
예수자랑사모선교회 회원들이 지난 20일 경기도 양주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에서 열린 수련회 개회예배를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

홀로 된 사모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각기 다른 지역, 다른 교회를 섬겼지만 이 자리에선 하나의 가족이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이들은 “살 빠지셨네요” “머리 더 희어졌네요” 등 농담 섞인 안부를 물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최근 경기도 양주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감독회장 김정석 목사) 본부 예배실에서 열린 예수자랑사모선교회(예자회·회장 배영선) 수련회에서의 풍경이다. ‘동행’을 주제로 전국에서 모인 사모 24명이 2박 3일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첫날 개회 예배를 드린 뒤 강원도 철원으로 이동해 고석정과 철원제일교회 장흥교회 등 순교 유적지를 둘러봤다. 저녁에는 철원 신생교회에서 기도회를 했다. 기도회 찬양 시간에 CCM 아티스트 손경민의 곡 ‘충만’을 불렀다. “고난 중에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주의 계획 믿기 때문이라”는 가사가 흐르자 곳곳에서 코끝을 훔치는 손이 보였다. 한 사모는 “이 노래가 딱 우리 이야기 같다”며 눈을 감았다. 자조 모임으로 시작된 예자회는 교단과 교회의 지속적인 도움 속에 어엿한 선교단체로 성장했다. 이번 수련회는 그 성장의 결실을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정미숙(64) 사모는 이번 수련회 참가자 중 젊은 축이었다. 그는 스무살은 더 많은 선배 사모의 팔짱을 끼고 “언니”라 불렀다. “우리 미숙이는 진짜 애교쟁이야.” 누군가 농담을 던지자 방 안이 웃음으로 채워졌다. 그런 정 사모의 웃음 뒤에는 긴 어둠이 있었다. 남편을 폐암으로 떠나보낸 지 10년이 넘었다. “보험 하나 없었어요. 병원비, 장례비 다 치르고 나니 남은 게 없더라고요.” 신학을 공부했지만 교회로 다시 돌아갈 힘이 없었다. “여러 곳에서 전도사로 오라 하셨는데 그럴 마음이 안 났어요. 사람도, 예배도 다 멀게 느껴졌죠.”

예자회를 처음 찾은 건 2년 반 전이였다. 천안 센터 입구에서 사모들이 다가와 “고생 많았어요”라며 포옹했을 때, 그는 말없이 울었다. 정 사모는 “그날 이후로 예자회 모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며 “위로받으면서 또 위로할 수 있는 자리”라고 했다. “제가 여기서 막내라 애교가 많다”며 “받았던 따뜻함을 이제는 나누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예자회의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립자 이정정(82) 사모는 그해 성탄을 앞두고 사모 300여명에게 직접 카드를 썼다. “목사님 살아 계실 땐 성탄 카드가 수백장씩 왔는데 돌아가시고 나선 한 장도 안 오더라고요. 그때 참 서글펐죠.” 그는 교단 주소록에서 자신과 같은 사모들 이름을 찾아내 한 장 한 장 자필로 카드를 썼다. ‘예수께서 지구촌이라는 병원에서 사모들을 간호사로 쓰시길 원하신다’는 문장을 담았다. 편지를 받은 몇몇 사모들이 전화를 걸어왔고, 그들과의 첫 만남이 예자회의 시작이었다.

99년 1월 3일 경기도 용인의 자택 거실에 사모 10명이 모였다. 찬송가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찬양소리가 작은 공간을 채웠다. “서로 손잡고 울었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요.” 이후 모임은 점차 커졌다. 사모들은 매월 월례회와 월요기도회를 이어갔고, 한 푼 두 푼 모아 장학사업도 시작했다.

현재 회원은 150여명이다. 예자회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기감의 도움이 컸다. 김용주 경신교회 원로목사가 서울 서초구 오피스텔을 내주며 모임이 자리를 잡도록 도왔다. 이후 충남 천안 예자회 선교센터가 세워졌다. 10년간 회원들이 대지를 마련했고, 백모 권사 부부가 모친의 뜻을 따라 건물을 지어 봉헌했다. 센터는 2016년 입당해 올해로 9년째를 맞았다.

센터 마당에는 매실나무가 여러 그루 자란다. 여름이면 과실이 주렁주렁 열린다. 전국에서 모인 사모들이 함께 매실을 따고 씨를 골라내고 설탕을 켜켜이 쌓아 매실청을 담근다. 장독대에는 된장이, 부엌 한쪽에는 청국장이 익어간다.

“처음엔 맛이 일정치 않았어요. 그래도 교회들이 다 사줬어요.” 창립 멤버 김윤출(85) 사모가 웃으며 말했다. 김 사모는 “어느 해엔 너무 짜서 반품될 줄 알았는데 ‘사모님들 손맛이라 더 귀하다’며 교회에서 많이 사주시더라”며 “지금은 일정한 맛을 내는 조리법이 자리 잡았고 장맛으로 유명해졌다”고 전했다.

된장과 매실, 청국장을 팔아 전달하던 작은 정성은 주변의 도움이 더해지며 규모를 키워갔다. 2010년부터는 기감 목회자유가족자녀돕기운동본부(회장 김진호 감독)의 후원을 받아 매년 2월과 8월 장학금 전달식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까지 1000여명에게 12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허리 수술로 회복 중인 회장을 대신해 모임을 이끄는 길향옥 부회장은 “이제는 우리가 받은 위로를 후배 사모들에게 돌려줄 때”라며 “홀사모가 외롭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예자회는 앞으로도 기감과 지역 교회, 선교 단체와 협력해 돌봄의 폭을 넓혀갈 계획이다. 센터 공간 일부를 ‘쉼과 회복의 하우스’로 개방하고 장기적으로는 배우자 사별 목회자 가정을 위한 상담과 자립 지원 프로그램도 추진할 계획이다. 길 부회장은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며 “그게 신앙이고, 삶 아니겠냐”고 말했다.

양주=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