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지인이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왼쪽 브레이크 레버를 급히 당긴 게 화근이었다. 그는 왼쪽이 뒷브레이크인 줄 알았다. 아니, 머리로 안다기보다 몸이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전거 브레이크 레버 위치는 2010년 전후로 바뀌었다. 그전에는 왼쪽이 뒤, 오른쪽이 앞브레이크 레버였지만 안전기준 개정으로 지금은 왼쪽이 앞, 오른쪽이 뒤가 됐다. 이유는 명확하다. 오른손이 더 강하므로 속도 제어의 핵심인 뒷브레이크를 오른손으로 조작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익숙함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오랜 습관은 이성보다 빠르게 몸을 움직이게 한다. 결국 익숙함이 사고를 부른다. 연습하면 바꿀 수 있지만 몸이 먼저 기억하는 법칙, 그것이 바로 관성이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인간은 관습(convention)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판단 근거가 부족할수록 사람들은 다수의 행동과 익숙한 고정관념에 기대려 한다. 사회의 관습이 오랜 시간 축적된 집단의 기억이라면 습관은 개인의 몸에 각인된 반복의 기억이다. 두 기억이 겹치면 변화는 더디다. 부동산 시장의 심리도 이 법칙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 사회에 깊이 박힌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일종의 사회적 습관이다. ‘집값은 결국 오른다’는 맹목적 믿음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고, 철학이라기보다 왜곡된 신앙에 가깝다. 과거 상승기를 거치며 자산을 축적한 세대의 기억이 사회 전반에 전이되면서 그 믿음은 세대를 넘어 하나의 신념 체계가 됐다.
기성세대가 ‘부동산 중독증’이라면 요즘 젊은 세대는 ‘아파트 편식증’에 가깝다. 표준화된 주택인 아파트는 주식처럼 거래되며 주거 공간을 넘어 신분이자 성공의 상징이 됐다. 생활 편의성, 가격상승 기대, 투자의 손쉬움이 맞물려 아파트 공화국이 굳어졌다. 사람들은 콘크리트 건물보다 그 안에 담긴 가격을 믿는다. 문제는 이 집단적 확신이 자본의 흐름을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돈이 생산적 투자보다 익숙함을 쫓아 부동산으로 몰리면 경제의 혈류는 점점 굳는다. 자본이 혁신과 신산업으로 흐르지 못하면 경제는 활력을 잃고, 국가경쟁력도 약화한다. 정부가 아무리 ‘혁신성장’을 외쳐도 국민의 마음속 ‘투자 레버’가 여전히 부동산 쪽으로 고정됐다면 구호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단순한 규제 강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부동산 세금이나 대출 제한만으로 자본의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 정책의 핵심은 돈의 습관을 바꾸는 데 있어야 한다. 투자 경험이 다양해지고, 금융시장이 신뢰와 매력을 갖춰야 자본이 움직인다. 주식, 채권, 스타트업 등 금융자산이 위험한 모험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으로 인식되게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이 체감할 투자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금전적 투자 경험이 쌓여야 ‘부동산만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깨진다. 금융교육 또한 선택이 아니라 국가 전략이 돼야 한다. 학교·사회 교육 전반에 걸쳐 ‘금융 리터러시(문해력)’를 높여야 한다. 부동산 중심의 자산관리 관성을 깨려면 금융을 통한 축적의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알려야 한다. 투자 실패 공포를 줄이고, 장기적이고 건전한 투자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시중의 부동자금이 부동산이 아닌 금융시장으로 유입되도록 만드는 일은 단박에 이뤄질 수 없다. 그것은 학습과 경험을 통해 사회심리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익숙함의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정책의 지속성과 설득력이 함께 가야 한다. 요컨대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와 이해를 높이는 실질적 경험 제공이 관성의 벽을 허무는 핵심이다. 시장을 강제로 누르는 대신 국민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부드럽게 유도하는 넛지(nudge)의 지혜도 필요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