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영유아기 육아와 교육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 아닌 사회적 돌봄 및 교육체계 속에 자리 잡았다. 영유아가 가정이나 어린이집, 유치원에만 머물 이유는 없다. 영유아의 필요와 관심에 따라 성장과 발달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배움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요즘 사교육계는 영유아기 교육의 개념을 조각내고 흔들며 가족의 역할마저 흔들고 있다. 그 파괴력은 상당하다. 영유아기 조기 사교육 논쟁은 부모의 선택권과 영유아의 발달권 논쟁으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특히 영유아기를 어떻게 보내도록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지나치게 ‘도구적 관점’에서 다뤄지고 있다.
“무엇이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되는 도구적 관점은 교육 본래의 목적을 변질시키고 있다. 자녀에게 경쟁력을 갖게 하고 싶은 부모들은 이 관점에 현혹되기 쉽다. 하지만 영유아 조기교육의 장기적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육아정책연구소를 포함해 여러 연구를 통해 사교육에서 횡행하는 과도한 학습이 아이들의 사회정서 발달 등에 악영향을 을 준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영유아기는 초당 100만개 이상의 신경 연결이 일어나는, 생애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평생의 발달을 좌우한다.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가능성이자 위기의 시기’라고 부른다. 이 중요한 시기를 과도한 사교육으로 채우라고 말하는 전문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부모는 불안과 경쟁심에서 비롯된 조기 학습에 몰두하며, 아이의 시간을 계획하고 설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자율적 탐색과 경험의 기회를 빼앗긴다. 부모와 가족이 함께 보낼 시간이 줄고, 아이의 일상에서 자율적 경험의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영유아기의 배움은 무엇을 더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경험하게 하느냐의 문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효과적인 학습’이 아니라 자기 속도로 탐색하고 실패하며 배우는 경험이다. 진정한 의미의 영유아기 배움은 결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아이의 성장은 효율로 측정될 수 없으며, 관계와 경험을 통해 완성되는 유기적 과정이다.
영유아 교육은 변곡점에 놓여 있다. 영유아 수가 급감하고 있고, 교육부는 국가책임교육에 방점을 찍은 유보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4세 고시’ 같은 영유아 조기 사교육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영유아기 성장과 돌봄을 ‘효과’나 ‘성과’로 판단하지 말고 아동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경쟁 압력을 줄이고, 아동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사교육계도 이런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아이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그 배움의 속도와 방향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향한 모두의 책임이다.
황옥경 육아정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