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트럼프 핵보유국 발언, 김정은 대화 위한 수사적 표현”

입력 2025-10-27 02:0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면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을 ‘일종의 핵보유국’이라고 지칭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북한을 ‘일종의 핵보유국(sort of nuclear power)’이라고 부른 것은 근본적인 외교 정책의 변화보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동을 유인하려는 전략적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미 행정부의 북한 비핵화 원칙 유지 방침과는 별개로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미끼 발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메시지 전략이 미국의 대북 접근방식 변화를 시사하는 오인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반도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26일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북·미 회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호의적 태도를 보이려는 개인적 외교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적인 대북 정책과 트럼프 개인의 외교 전략은 구분해야 한다”며 “판문점 회동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식 무대에서는 여전히 북한 비핵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어서 김 위원장을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을 던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하는 것은 피하면서도 “그들(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며 북한이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를 남겨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현실과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 사이 괴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활용한 외교적 수사라는 것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니 그걸 인정하자는 단순한 취지”라며 “북한에 핵보유국 지위를 부여하자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핵보유국으로 정말 인정해주지는 않은 굉장히 애매한 표현”이라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김 위원장의 요청에 가장 근접한 언급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이후 여러 차례 김 위원장을 ‘뉴클리어 파워’로 지칭했다. 다만 지난 3월엔 ‘확실히(definitely)’라는 수식어를 넣었는데, 이번에는 ‘일종의(sort of)’라며 모호성을 넓혔다. 임을출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보유국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을 판문점 회동에 나오게 하려는 수사적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 현실을 공개 인정한 것이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향후 미국의 북한 비핵화 원칙을 실제로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반 교수는 “이번 발언은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담당자가 정책으로 구체화할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며 “우리 정부는 북한 비핵화 공동 목표를 위해 한·미 협력 체계를 강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고 진단했다.

송태화 박준상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