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판 커진 APEC 한·미 정상회담, 국익 우선 원칙 잊지 말길

입력 2025-10-27 01:20

어제 이재명 대통령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출국하면서 이번 주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이어지는 ‘정상외교 슈퍼위크’의 막이 올랐다. 미국발 관세전쟁과 격화되는 안보 지형 속에서 열리는 일주일간의 다자 정상외교의 장은 이재명정부가 표방하는 국익 중심 실용주의의 시험대다. 이 대통령이 여러 정상들과 만나 국익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겠지만 국민들의 이목은 단연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 쏠릴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에 나서면서 한국의 경제·안보에 영향을 줄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부진한 한·미 관세협상 타결 여부에 대해 “매우 가까워졌다”면서도 “한국이 먼저 준비가 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한국에 결단을 촉구한 것이다. 협상 핵심 쟁점인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 구성 방안을 놓고 한·미 간 입장 차가 여전히 팽팽함을 보여준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기존의 전액 ‘선불’ 주장 대신 8년간 연평균 250억 달러를 투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측은 이 역시 외환 상황에 비춰 부담스럽다며 액수는 낮추고 기한은 더 늘리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동 의사를 노골적으로 내비친 것도 예사롭지 않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 나는 열려 있다”며 “북한은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핵 보유국)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지난달 비핵화 포기를 미국과의 만남 선결 조건으로 제시한 것에 적극 호응한 모양새다. 단순한 립서비스 차원을 넘었다. 트럼프가 중동 문제,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의 피스메이커 이미지에 고양된 터라 APEC에서의 북·미 만남 깜짝쇼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경제와 안보의 빅이벤트를 우리의 국익에 제대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정부가 분위기에 휩쓸려 방심하거나 예단을 갖기보다 냉철한 판단과 수싸움이 더욱 필요할 때다. 무엇보다 성과를 내야 하고 불확실성 확대를 피한다는 차원에서 관세협상을 서둘러선 안 될 것이다. 협상 결과는 우리의 수출, 외환시장, 투자 나아가 고용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미 통상 윈윈의 결과를 반드시 도출해야 한다. 북·미 회동 역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과정으로 본다면 바람직하나 자칫 한국 패싱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트럼프의 ‘북한 핵보유국’ 언급이 만남을 위한 명분이 아닌 실제 북핵을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지면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에 엄청난 리스크가 된다. 한·미 안보 협상 등을 통해 이 부분을 철저히 관리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바란다. 한국 경제·안보의 운명과 직결된 문제에서 우리가 호구나 구경꾼이 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