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그간 가장 전향적인 ‘일종의 핵보유국’이라고 표현하면서 이제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몫으로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 평가와 대내외적인 관심도를 생각하면 김 위원장이 응할 가능성도 이전보다는 커진 상태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지금보다 더욱 분위기가 좋았음에도 실패로 끝난 2019년 ‘하노이 노딜’ 충격을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망이 분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길 전용기 안에서 북한에 대해 “나는 그들이 일종의 핵보유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월과 3월에 이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29~30일 방한 과정에서 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알리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연내에 만나고 싶다”고 밝혔고 김 위원장은 지난달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포기를 철회하면 대화에 열려 있다”고 화답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북한을 ‘일종의 핵보유국’이라고 언급하면서 다시 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김 위원장을 위한 판이 깔린 만큼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섰던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손까지 잡는다면 ‘정상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한층 더 공고히 구축할 수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김정은은 트럼프와 악수만 해도 새로운 판을 열 수 있다”며 “시진핑, 푸틴에 이어 트럼프까지 만나서 내부 체제 강화는 물론 전 세계적인 이목을 가져온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김 위원장이 대화장에 나오긴 어렵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하노이 트라우마’가 있는 김 위원장은 무의미하게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는 것보단 결과를 담보할 확실한 협상을 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이날 러시아와 벨라루스 방문길에 오른 점도 사실상 북·미 대화를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트럼프와의 회동 거부를 시사하는 명확한 대미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북·미 대화가 이뤄지길 바라고 이뤄지면 성원하려고 한다”면서도 “관심 갖고 미국 측과 소통하지만 특별히 알고 있는 건 따로 없다”고 말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