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1일 핼러윈 데이를 앞둔 마지막 주말인 2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분위기는 차분했다. 핼러윈을 상징하는 장식이나 포스터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코스튬 차림의 시민도 눈에 띄지 않았다. 축제를 맞이하는 흥겨움 대신 차분한 추모 분위기가 거리를 채웠다.
3년 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길 입구에 설치된 게시판에는 시민들이 남긴 수많은 포스트잇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헌화하거나 메시지를 읽으며 추모에 동참했다. 직접 추모 카드를 만들었다는 김모(25)씨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현장을 찾았다”며 “남 일이라는 생각보다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중앙에는 빨간색 접이식 분리대가 길게 설치돼 시민들의 통행이 한결 정돈된 모습이었다. 거리의 CCTV 폴대에 설치된 표지판은 인파 혼잡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경찰은 지난 2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핼러윈 특별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이태원·홍대 등 서울시내 인파 밀집지역 14곳에 대한 인파 안전관리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전날 서울광장에서도 유가족과 시민, 종교·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한 시민추모대회가 열렸다. 지난해 이태원참사진상규명특별법이 통과된 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유가족대책회의가 공동주최한 첫 공식 행사다. 참가자들은 희생자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송해진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이제야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외국인 희생자 14개국 26명 중 12개국 21명의 유가족도 행사에 참여했다. 호주인 희생자 그레이스 라쉐드씨의 어머니 조안 라쉐드씨는 “책임자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아이들의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두 딸과 함께 온 심모(48)씨는 “집에서만 슬퍼하지 않고 함께 기억하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왔다”며 “기억은 힘이 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공회대 3학년 한송연(22)씨는 “학교에도 2명의 희생자가 있어 학내 추모를 이어가고 있다”며 “유가족들이 직접 나서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진짜 변화는 구조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경진 이찬희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