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부족하던 시절, 한 마라톤 온라인 게시판에서 필명 소나무님의 ‘MMT 100’(Massanutten Mountain Trails 100mile run) 실패기를 읽었다. “여기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내 연락을 받은 그는 흔쾌히 다음 동행을 약속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입국이 어렵던 때다. 비자 인터뷰 줄만 300명이었고, 여권 첫 장을 꿰맨 실밥이 훼손됐다는 이유로 재발급받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손에 쥔 미국 비자, 국가고시 합격보다 기뻤다.
출국 전 한 달은 전쟁이었다. 대회 공지를 번역해 체크포인트(CP)와 기후, 장비, 영양 계획을 표로 정리했다. 울트라를 다녀오면 근력이 줄어들기에 주말엔 10㎞부터 풀코스까지 섭렵하며 스피드를 끌어 올렸다. 출국 일주일 전에 받은 종합검진 결과는 ‘이상 없음’. 달린 거리만큼 연골이 닳는 건 아니었다.
어렵게 도착한 워싱턴 DC 공항 대합실에서 소나무님과 비닐 두 장 깔고 밤을 새웠다. ‘내가 왜 이 고생을….’ 새벽 비행기였는데 조식은 없었다. 주린 배를 안고 다음 날 대회장 인근 숙소로 향했다. 숙소 주인은 “첫 한국인 손님”이라며 라면을 끓여줬다. 힘이 났다. 임마누엘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며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침대 맡에 성경을 펴고 시편 한 구절을 읽었다. “주는 나의 힘이요, 나의 산성이시라.”(시 18:2)
새벽, 출발선에서 기도했다. “오늘도 주의 영광을 위해 안전하게 달려가게 하옵소서.” 엔트리 159명이 잔디를 박차고 어둠 속으로 달려나갔다. CP2에서 3위, 누적 1시간19분. MMT 100은 900m급 봉우리 16개를 넘는 코스다. 오르막에서는 내가 강했다. 하지만 바위에 허벅지를 찧으며 멍이 번졌다. 진통제를 삼키며 버텼다.
일명 ‘지옥의 오르막’에선 세계 최강 선수 칼 멜처와 나란히 뛰었다. 그는 내리막의 제왕이었고 나는 오르막의 사나이였다. CP7에서 맡겨둔 장비 가방을 찾아 헤매다 시간을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땀에 젖은 손으로 배낭에 새긴 익투스 물고기를 한 번 더 쓸어내렸다.
CP14에서 다시 선두에 올라섰다. 허벅지 통증이 치밀었다. 포인트에 들어서면서 “타이레놀”을 외쳤다. 약을 먹고 약효가 돌자 에너지가 솟구쳤다. “이제는 굴러가도 완주한다.” 마지막 CP17, 급경사 낙엽길을 기어오르며 마무리 시간을 계산했다. “15분.” 주먹을 쥐고 내리막을 내질렀다. 17시간40분45초. 대회 최고기록이었다.
시상식에서 완주자는 은 버클을, 우승자는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우승자는 재덕 심!” 지금까지도 18시간 이내 완주자는 나와 칼뿐이다. 전설 같은 이름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그를 넘었으니 그토록 간절했던 첫 번째 꿈, 세계 최고의 트레일 러너가 된 날이었다. 이 우승으로 미국 잡지 ‘울트라러닝’ 표지 모델이 되고 또 다른 무대 웨스턴 스테이츠 초청장을 받았다.
날 향한 박수가 멎은 뒤 다시금 배낭의 익투스 표시를 쓸어내렸다. 끝까지 달리게 하신 손길. 그 은혜가 기록보다 값졌다.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