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두 주지사의 방한

입력 2025-10-27 00:38

지난주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켐프, 테네시주 빌 리 주지사가 한국을 찾았다. 두 주지사는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자동차·배터리 주요 기업 경영진과 각각 회동하고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다. 켐프 주지사는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의 애로 중 하나인 비자 제도 개선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2019년 이후 6년 만에 방한한 리 지사도 한국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번 방한에는 경제개발부 장관 등 주정부의 핵심 인사들도 동행했다. 한국 기업을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예우하고 있다는 의미다.

조지아주와 테네시주는 한·미 산업 투자 협력의 중심지이자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SK온은 조지아주 잭슨카운티에 22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단독 공장(SK배터리아메리카·SKBA)을 운영하고 있다. 조지아주는 SKBA가 지역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공장 부지 인근 도로명을 ‘SK블러바드’로 바꿨을 정도다. LG화학은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30억 달러 이상을 들여 대규모 양극재 공장을 짓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해 설립한 얼티엄셀즈 2공장을 운영 중이다. 이들 지역은 전기차·배터리 분야에서 미래 제조업 허브로 거듭나기 위해 한국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다.

이달 초엔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연쇄 회동했다. 이 만남을 계기로 삼성과 SK는 오픈AI가 주도하는 대규모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큰 AI 인프라 프로젝트’라고 직접 소개한 사업에 한국 기업이 핵심 파트너로 합류한 것이다. 이번 주는 천년고도 경주에서 글로벌 빅테크 거물들이 모여 AI 대전환을 논의하는 장이 펼쳐진다. 28일 환영만찬을 시작으로 나흘간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CEO를 비롯해 맷 가먼 아마존웹서비스(AWS) CEO, 사이먼 칸 구글 마케팅 부문 부사장, 율리크 호만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AI 부문 부사장, 사이먼 밀너 메타 부사장 등이 대거 참석한다. APEC CEO 서밋을 주관하는 대한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재계는 빅테크 거물들을 초청하기 위해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 젠슨 황 방한을 계기로 국내 주요 기업들과의 ‘AI 동맹’ 논의가 구체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이렇듯 해외에서 인정받고 활약하는 한국 기업이지만 국내로 눈을 돌리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경제계는 최근 정기국회의 본격적인 법안 심사를 앞두고 국회가 주목해야 할 30개 입법과제를 제시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지원 강화, AI 산업 및 인재 육성, 벤처투자 활성화, 불합리한 경제형벌 개선 등이다. 신속한 입법이 필요한 과제라는 데 이견이 없는 것들이다. 현재 국회에는 9건의 반도체산업 지원 법안이 발의돼 있다. 반도체 패권 경쟁 속 여야 모두 법안 처리에 공감하지만 몇몇 핵심 쟁점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해 논의가 공전하고 있다. 경제계 숙원 사업인 경제형벌 개선 작업은 그간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해도 대부분 입법 사안이라 국회 벽을 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포함한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발표하고 정기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활동을 옥죄는 110개 경제형벌 조항을 1차 개정할 계획인데, 각 법률에 산재된 6000여개 경제형벌 조항 중 약 1.6%에 불과하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이번에는 진전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권지혜 산업1부 차장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