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시골에서 의사 생활을 하신 선친은 거의 매일 왕진을 다니셨다. 분만이 시작되거나 사고가 나거나 급성 복통이라도 생겼을 때 걷지 못하는 환자가 선친의 진료실까지 올 수 있는 수단은 소달구지밖에 없었다. 의사가 움직이는 것이 빨랐기에 아버지는 자전거에 왕진 가방을 싣고 먼 길을 다녀오셨다. 교통수단이 좋아지자 왕진을 가야 할 요구가 줄고 어느새 사라졌다.
그간 잊혔던 왕진이 방문 의료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고 있다. 이제는 의료기관에 오기 어려운 사정이 ‘교통수단의 부재’가 아니라 환자의 ‘거동 불편’으로 변했다. 왕진이 응급 때문이라면 방문 의료는 만성질환을 다룬다. 와상이나 중증장애로 통원이 어려운 노인과 장애인이 늘어나니 방문의 필요가 다시 크게 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지역사회 돌봄이 추진하는 미래의 방문 의료는 과거의 왕진과는 짜임새가 다르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팀이 된다. 의사는 환자 상태에 따라 한 달에 한두 번, 간호사는 서너 번 찾아가 질병을 관리하고 욕창과 감염을 예방한다. 사회복지사는 생활 상태, 가족 관계와 돌봄 부담 등을 파악해 대책을 세워준다. 영양사, 임상심리사, 의료기사들이 같이한다. 약사가 한 보따리씩 있는 약을 뒤져 중복 처방과 불필요한 약을 정리해주면 그것만으로도 건강이 좋아진다. 노인이나 장애인은 구강 위생 상태가 나쁘거나 씹고 삼키는 힘이 약해 영양 상태까지 악화된 분들이 많다. 그럴 때는 치과의사와 치위생사가 집으로 가서 해결해 준다.
장애인과 노인들은 신체와 정신 기능에 다양한 기능 저하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정확한 진단을 받기 어렵고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재활 치료를 받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재활의 미충족 필요가 우리 가정의 곳곳에 켜켜이 쌓여있다. 이 문제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재활의학 의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건강운동관리사 등으로 구성된 재활팀이 집으로 찾아가는 기능을 복구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체제가 쉽게 구성될 리는 없다. 각 전문 인력의 참여가 필요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재정이 준비돼야 한다. 또한, 직역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새로운 협력 방식을 찾기 위해 직종 간 협의를 통해 업무를 명확히 나누고 행동 지침을 합의해야 한다. 장애인과 노인의 딱한 처지를 보면서 더 이상 머뭇거릴 수는 없다. 도전이 필요하다.
(재)돌봄과 미래,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