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없기에 개혁 나선다지만
결국 자신에 불리한 판결 때문
공청회마저 생략한 부실 입법
과정적 정의마저 잃어버려
공감 위한 필요성 제시하고
객관적, 투명한 절차밟아야
결국 자신에 불리한 판결 때문
공청회마저 생략한 부실 입법
과정적 정의마저 잃어버려
공감 위한 필요성 제시하고
객관적, 투명한 절차밟아야
개혁은 제도나 기구를 새롭게 바꾸고 고친다는 의미로, 현재의 제도에 문제가 누적돼 바꾸지 않으면 더 이상 기대한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때 필요성이 인정된다. 새로운 제도는 현재의 누적된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도록 설계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관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사법개혁안을 평가해 보자. 민주당은 대법관 수를 현재 대법원장 포함 14인에서 3년 동안 매년 4인씩 12인을 증가시켜 26인으로 증원하겠다고 한다.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 대법원 최종 판결에 불복해 헌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고 한다.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의 다양화, 법관평가제 도입,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등도 포함됐는데,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추천위 구성의 다양화 외에는 개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민주당의 인식이다. 민주당은 사법부가 법률을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위법 여부를 심판한다는 것은 ‘위선’이고 ‘자가당착’이며,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은 전적으로 사법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짐작건대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이 위법이라는 판단에서 사법개혁의 배경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스스로 이번 사법개혁안이 집권 세력에 불리한 판결을 한 사법부를 바꾸겠다는 의도임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다. 더욱이 증원되는 대법관에 대한 임명권을 이 대통령이 행사하게 되니 누가 봐도 이 대통령과 민주당에 유리한 판결을 위한 개혁(?)임이 분명해 보인다. 누적된 제도적 문제점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판결 때문이라면 이는 삼권분립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폭거임이 명백하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입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을 뚫고 이미 지하로 곤두박질친 지 오래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회가 법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위선이며 자가당착 아닌가. 사법개혁을 논하기 전에 국회를 먼저 개혁해야 하는데,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고 집권세력에 불리한 판결을 한 사법부를 바꾸겠다는 오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렇게 국민이 우습게 보이는가.
민주당이 내놓은 사법개혁안은 과정적 정의도 잃어버렸다. 사법개혁의 주체인 사법부를 완전히 배제한 채, 국민의 불신이 최고 수준에 달했다 해도 국회에서 야당과의 논의조차 없이 멋대로 개혁안을 내놓았다. 대안의 적절성과 충실성에 대해 법조계의 의견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법관들의 참여와 토론, 국민에 대한 설명회나 공청회, 혹은 사법부의 근간을 흔드는 내용에 대한 최종적 이해관계자인 국민의 참여도 전혀 없었다. 그저 민주당 내에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내용을 개혁안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런 부실한 과정을 통해 사법의 근간을 바꾸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끝으로 무엇이 어떻게 좋아지는지 결과에 대한 설명도 없다. 대법관 수를 증원하면 사법부의 신뢰가 높아지는가. 사법부의 신뢰 증대는 오히려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확고할 때 가능할 것이다. 헌법에 규정한 3심제의 원칙을 실질적인 4심제로 바꾸는 것이 위헌인지 고민조차 없다. 대법관이 26명으로 늘어나면 그들을 보좌해야 할 연구관들이 얼마나 증가해야 하고, 대법원 합의부 판결에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시뮬레이션이라도 해봤는가. 재판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라는 해석이 애매한 조건을 내세워 사실상 4심제를 허용하는 것이 진정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검토라도 해봤는가 말이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예산이 필요한지 구체적 내용에 관해서는 어떤 것도 제시된 바 없다.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필요성부터 제시해야 한다. 개혁의 과정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며, 그 결과물은 국민의 이익을 증진하고 정의가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집권여당이 제시한 사법개혁안은 이 중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것이 개혁인가, 아니면 개악인가.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
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