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음 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동시에 국빈 방한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29일 트럼프 대통령과, 다음 달 1일 시 주석과 연쇄 정상회담을 갖는다. 미·중 간 관세전쟁으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고조된 가운데, 이 대통령이 양국 사이에서 벌일 ‘가교’ 역할이 시험대에 올랐단 평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같은 내용의 APEC 정상외교 일정을 소개했다. 미·중 정상이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국빈 방문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처음이다. 시 주석의 방한은 중국 정상으로서 11년 만이다.
이 대통령은 29일 오후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으로 정상외교의 포문을 연다. 이어 APEC 본회의 마지막 날인 다음 달 1일 차기 APEC 개최국인 중국의 시 주석에 의장직을 인계하고, 당일 오후 곧바로 한·중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위 실장은 “한·중 정상회담에선 한반도 이슈와 북한 이슈 및 주변 정세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상회담 외에 이 대통령과 양 정상의 만찬도 조율 중이다.
이 대통령이 관세전쟁으로 인해 고조된 미·중 사이 긴장 관계를 누그러뜨리는 책임 있는 가교 역할을 수행해 낼지 관심이 쏠린다. 다음 달 10일 만료되는 2차 관세 휴전 기한을 앞두고 중국은 희토류, 미국은 소프트웨어 수출통제 카드를 꺼내 들며 서로를 더욱 강도 높게 압박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을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중국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발전시키겠다”며 “동북아 역내 긴장을 완화하고 공동 번영을 촉진하는 가교 역할을 (한국이)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는 “경쟁과 협력 요인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면서, 철저하게 국익에 기반을 두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반중(反中) 시위에 대해 “이웃 국가 간의 불신을 초래할 뿐”이라며 거듭 자제를 촉구했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도 조율 중이다. 위 실장은 “이 대통령이 신임 일본 총리와 조기에 대면하면서 긍정적인 한·일 관계 흐름이 유지될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 여부도 관심사다. 다만 위 실장은 “(북·미 간 움직임에) 새로운 동향은 없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APEC 직전인 26~27일엔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말레이시아를 방문한다. 특히 온라인 스캠범죄 대응 공조를 논의하기 위해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위 실장은 “아세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경주 APEC 정상회의로 이어지는 다자외교 ‘슈퍼위크’가 펼쳐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