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국가유산의 사유화

입력 2025-10-25 00:40

방탄소년단은 2020년 미국 NBC ‘지미 팰런 쇼’를 위해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 앞에서 무대를 선보였다. 야간에 문화재청의 공식 허가를 받아 촬영된 이 공연은 한국의 전통을 세계에 알린 문화외교로 평가된다. 시민들이 경복궁·창덕궁·덕수궁 등을 거닐며 전통 공연을 즐기는 ‘궁중문화축전’은 국가유산이 모두의 축제의 장으로 열린 예다. 왕이 다스리던 궁이 시민과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의 공간으로 바뀔 때, 역사는 현재와 만났다.

같은 국가유산을 두고도 그 가치를 널리 비추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권력의 그림자로 가리기도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재임 중 수시로 궁궐을 찾으며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23년 3월엔 사전 연락 없이 경복궁을 방문해 닫혀 있던 경회루 2층과 명성황후 침전까지 들어갔다. “문을 열라”는 지시에 문이 열렸고, 두 사람은 경호원도 없이 곤녕합 안에 머물렀다. 경회루는 외국 사신을 맞던 조선의 외교 무대이고, 곤녕합은 명성황후의 거처로, 을미사변이 일어난 비극의 현장이다.

같은 해 9월 김건희 여사가 근정전의 어좌(御座)에 앉았다는 궁능유적본부 기록도 나왔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중심이자 조선 왕이 정사를 보던 곳이다. 중앙의 어좌는 왕권의 상징이며, 내부 출입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2024년엔 외국인 지인들을 데리고 종묘 망묘루에서 차담회를 열고 신실을 둘러봤다. 신실은 조선 왕과 왕비의 신위가 모셔진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신성한 공간이 사적 모임의 무대로 쓰였다. 이런 일련의 행태를 두고 “왕비놀이를 해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유산은 권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세대가 함께 쌓아온 시간의 기억이다. 공공의 상징을 사유화하는 순간, 국격은 추락한다. 민주공화국의 권력은 왕권의 계승자가 아니다. 궁궐의 문은 아무나 열 수 없다. 문을 열 수 있는 건 힘이 아니라 예의이며, 그 예의가 무너질 때 나라의 품격도 함께 흔들린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