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그 결실을 보기까지 과정은 멀고도 험난하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이룬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 그리고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불곰’ 이승택(30·경희)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콘페리투어 포인트 13위로 상위 20명에게 주는 ‘꿈의 무대’ PGA투어 내년 시드를 획득했다.
그는 지난해까지 KPGA투어에서 활동했다. 제네시스 포인트 5위 이내에 들어 PGA 2부인 콘페리투어 5위에 자리, 2~5위에게 주어지는 PGA투어 Q스쿨 2차전 응시 자격을 획득했다.
이어 Q스쿨 2차전에서 공동 14위를 마크, 상위 15명에게 주어지는 PGA 투어 Q스쿨 최종전에 막차로 진출했다. 이후 PGA 투어 Q스쿨 최종전에서도 공동 14위에 자리해 2025시즌 콘페리투어 출전권을 얻었다.
이승택의 PGA투어 입성은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제네시스 포인트 특전 제도를 통해 콘페리투어에서 활동한 뒤 PGA 투어에 진출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의 도전에 많은 사람의 만류가 있었다.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승택의 멘토인 ‘탱크’ 최경주(55·SK텔레콤)의 경우와 영락없는 데자뷔다. 당시 최경주의 도전에 ‘객기’라며 심지어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최경주는 1999년에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통과해 그 이듬해인 2000년에 PGA투어에 데뷔, 통산 8승을 거뒀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한국 골프사의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그런 점에서 ‘불곰’과 ‘탱크’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점은 최경주가 31세, 이승택이 그보다 1년 빠른 30세에 꿈의 무대를 밟게 된 것이다. 물론 둘 다 적잖은 나이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이승택이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축하 전화를 한 것도 최경주였다.
이승택은 “수시로 전화해서 조언을 듣곤 하는데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프로님께서 먼저 전화를 주셔서 축하해 주었다”며 “고생 많았고 자랑스럽다. 잘 준비해서 더 큰 꿈을 이루기 바란다는 덕담을 해주셨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사실 초반에는 힘든 것이 많았다. 이동 거리, 언어, 음식 등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그래서 일단 투어에 있는 선수들과 교류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KPGA 투어 활동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시일이 지나면서 하루하루 성장했던 것 같다. 그게 콘페리투어에서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했다.
콘페리투어는 미국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남미까지 이동해 개최되기도 한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경비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그는 “매주 평균 비행기로 5~6시간을 이동한다. 당연히 큰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며 “상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부분은 KPGA투어서 저축한 통장을 털었다. 또 스폰서의 도움도 받았다”고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이승택은 콘페리투어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기량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진화를 거듭했다. 좋은 연습 환경 때문에 그것은 가능했다.
그는 “범프앤런, 스핀을 먹이는 어프로치 등이 부족했다. 정상권 선수들과 플레이 하면서 어깨너머로 보면서 익혔다. 연습 때 가르쳐 주는 선수도 있었다. 그게 적응됐을 때 성적이 많이 올라왔다”며 “쇼트 게임은 PGA투어 가서도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 같다. 많이 연습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호쾌한 드라이버샷도 콘페리투어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승택은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30~40야드가량 차이가 났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나간다”며 “인상적인 것은 그렇게 멀리 치면서도 똑바로 간다는 점이다. 긴장감이 더하는 3~4라운드로 갈수록 외려 페어웨이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택한 전략이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장기로 버텨 보자’였다.
그는 “모든 면에서 많이 뒤처진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연습환경도 다르고 구사할 수 있는 샷도 제한적인 게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장기로 비빌 수밖에 없었다”며 “최대한 어프로치 안 하고 그린에 올리는 방향으로 했다. 다행히도 연습환경이 좋고 어우러져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어 빨리 필요한 어프로치를 익힐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PGA투어 루키 시즌인 2026시즌에 그가 설정하고 있는 목표는 뭘까. 이승택은 “투어 카드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점차 경쟁력이 생긴다면 우승 기회를 만들어 볼 것이다. 김시우, 임성재처럼 우승권에서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게 제일 우선이다”고 했다.
이승택은 3년여간 PGA투어 캐디 경험이 있는 전속 캐디 릭 리테이터(미국)와 루키 시즌을 보내게 된다. 출전 대회 수는 28~30개 정도다. 데뷔전은 내년 1월에 하와이에서 열리는 소니오픈이다.
그는 PGA투어 진출을 꿈꾸고 있는 KPGA투어 동료 선수들을 위한 조언도 남겼다. 이승택은 “KPGA 투어 선수들의 샷은 이미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며 “미국 코스의 경우 그린 주변에서 경기하는 것이 상당히 까다롭고 어렵다. 그것만 보완된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그는 당분간 이성 교제는 물론 결혼도 미루고 오로지 골프에만 전념하겠다고 했다. 이승택은 “아직은 결혼 생각 없다. 미국에서 골프 하는 게 재밌어서 당분간 생각 없다. 투어에만 전념하겠다”라며 “좋은 기회가 온다면 그때 생각해보겠다”는 확고한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승택에게 있어 PGA투어는 뭘까. 그는 “하루하루가 꿈이자 시합장이 항상 설레임 가득한 곳”이라며 “내년 데뷔전인 소니오픈에서 최경주 프로님과 함께 출전했으면 좋겠다. 미국 돌아가면 최 프로님을 찾아뵐 계획이다. 초대해 주셨다. 만나 뵙고 이것저것 많은 걸 물어볼 생각이다”고 했다.
이승택은 오는 30일부터 나흘간 경기도 여주 페럼클럽에서 열리는 KPGA투어 렉서스 마스터스(총상금 10억원)에 타이틀 방어를 위해 출전한다. 그는 2014년에 KPGA투어에 데뷔해 11년 만에 작년 이 대회에서 생애 첫 승을 거뒀다.
그는 이 대회를 마치고 나서 당분간 국내에 머물며 체력 훈련과 재활 치료 등에 전념한 뒤 소니오픈 개막을 1개월여 앞두고 출국할 예정이다.
이승택은 “KPGA투어 대회에도 관심 부탁드린다”며 “내년 PGA투어에서 실망시키지 않도록 잘 준비하겠다. 많은 응원을 보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팬들의 지지를 당부했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