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공지능(AI) 시대에 추구해야 할 가치는 적자생존식 경쟁이 아닌 공생입니다.”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는 2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컨벤션홀에서 열린 ‘2025 국민미래포럼’에서 ‘기초학문의 발달이 AI 시대를 판가름한다’를 주제로 한 특별강연에서 AI 시대를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아닌 ‘공생의 장’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AI를 위협이나 대체자가 아닌 공생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AI 시대는 인간 두뇌 바깥에 있는 여러 두뇌와 외적(external)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기막힌 진화의 전환점”이라며 “자연의 진화가 투쟁보다 협력을 통해 발전해 온 것처럼 인간과 AI의 관계 역시 경쟁이 아닌 공생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AI를 공생 대상으로 봐야 하는 이유로 자연의 진화 방식을 예로 들었다. 그는 “다윈의 생존 투쟁 이론 이후 자연을 전장으로 보는 인식이 굳어졌지만 실제 자연은 오래전부터 ‘이기기 위해 협력하는(co-opetition)’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며 “장내 미생물이 인간의 생존에 긴밀히 연결돼 ‘내적(internal)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AI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AI가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시각의 전환을 주문했다. AI가 귀찮고 위험한 일을 대신하게 되면 인간은 그만큼의 생산성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직업의 ‘직’이 문제가 있는 것이지 ‘업’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즉 일거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불 끄는 로봇을 만든다고 소방대원을 다 없앨지 말지는 인간에게 달린 문제”라고 했다.
최 교수는 AI 시대에 인간이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 그 자체보다는 ‘공생지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지성(intellect)을 갖추기는 어렵다”며 “AI와 달리 인간은 가족이나 친구, 불쌍한 사람을 위해 때로는 져주고 한발 물러나는 공생지능을 가진 존재”라고 말했다.
AI 시대의 인재상으로는 ‘통섭형 인재’를 제시했다. 그는 “모든 국민이 코딩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며 “하나의 분야를 깊이 이해하면서도 다른 분야와 연결해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 AI 시대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건 기술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철학적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 시를 읽는 사람이 챗GPT에 질문을 던졌을 때 더 풍성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기초과학 분야 정책 방향으로 “대한민국이 AI 시대의 선두 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기초학문, 특히 인문학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