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시민단체들이 대규모 집회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주요국 정상들이 집결하는 초대형 외교행사를 앞두고 반미(경제 침탈 반대)·반중(차이나 아웃)의 정치 구호를 앞세운 시위가 벌어질 경우 올해 초 탄핵정국 때와 같은 상호 시위대 간 대규모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APEC 정상회의 주간인 오는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경주 도심 곳곳에는 13개 단체가 16건의 집회시위를 신고했다. 보수단체 자유대학은 27일부터 30일까지 경주 황리단길 인근 도로에서 2000여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 행진도 예정돼 있다. 자유대학은 지난해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엔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차이나 아웃(CCP OUT)’ 등 구호를 외치며 반중 시위를 벌여 경찰로부터 집회 제한 통고를 받기도 했다.
35개 진보 인권단체와 진보정당은 2025 APEC 반대 국제민중행동조직위원회(조직위)를 꾸렸다. 조직위는 미국의 관세협상 압박에 반대하는 취지로 29일과 다음 달 1일 경주에서 트럼프 방한 규탄 기자회견, 국제민중콘퍼런스 등을 개최키로 했다. 서울에서도 규탄 행사를 준비 중이다. 조직위는 “강대국과 대기업 자본의 이익만을 위한 APEC을 반대한다”며 “기업 중심의 투자 생태계 형성은 환경파괴와 군사적 갈등 심화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등도 24일부터 30일까지 경주에서 다국적기업을 겨냥한 집회를 열 예정이다.
경찰은 일부 집회가 과격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 등에 대비해 28일부터 경북·부산경찰청에 ‘갑호비상’을 발령해 최고수준의 경계를 유지할 계획이다. 갑호비상이 내려지면 모든 경찰관의 연가가 중지되고 가용 경찰력의 100%까지 동원할 수 있다. 원활한 집회 관리와 안전한 행사 개최를 위해 하루 최대 1만8000여명의 경찰도 투입한다.
APEC 기간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주요 지역을 ‘특별치안강화구역’으로 지정하고, 범죄예방진단팀 등 전담팀을 편성해 범죄예방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안전한 행사 진행을 위해 경호태세를 갖출 것”이라며 “집회를 신청한 장소는 행사장에서 상당 거리 떨어져 있지만 시위대 이동 등 만일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