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국민학교를 다니던 한일영(67)씨는 방학을 맞아 서울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가다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붙잡혔다. 한씨는 경찰관에게 집 주소와 부모님 성함을 말했지만 경찰은 그를 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 보냈다. 부모와의 연락이 끊긴 채 그는 1993년까지 선감학원 등에 수용돼 폭력과 강제노동 피해를 당했다. 한씨는 23일 열린 손해배상 청구 기자회견에서 “(20년 넘는 세월 동안) 온갖 인권유린을 당했고, 초중고 배움의 길이 막혀버렸다. 국가 때문에 엉켜버린 삶의 실타래를 풀고자 한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이날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대리해 대한민국과 서울특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청구금액은 피해자 한 명의 수용기간 1년당 1억2000만원에 법정이자를 포함한 액수다.
서울아동보호소는 서울시가 부랑아 등을 보호하겠다며 1958년 설립해 1975년까지 운영한 임시 수용시설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지난 4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단속 과정에서 경찰, 공무원들이 아동의 신원과 보호자 유무를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고, 위협과 폭력을 사용해 아동들을 수용한 경우도 확인됐다. 아동들은 수용소에서 폭행, 성폭력, 강제노동 등에 시달렸으며 빈약한 식단과 위생상태로 각종 질병에도 노출됐다. 피해자는 재입소로 인한 중복인원 포함 11만6000여명으로 추산되며 이번 소송에는 피해자와 그 유족 10명이 참여했다. 서울시는 진화위의 사과 권고 이후 한씨 등 일부 피해자에게 개별적으로 사과문을 보냈지만 공식 사과는 아직 하지 않았다. 신수경 변호사는 “국가 공권력의 책임 있는 사과를 요청하는 취지에서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