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사라진 들녘… 벼 깨씨무늬병에 시름 깊어진 농심

입력 2025-10-24 00:55

“올해 농사는 완전 망했습니다. 겉은 노랗지만, 벼 속이 여물지 않아서 속이 타들어갑니다.”

23일 오후 전북 김제시 진봉면 한 들녘. 김제평야와 만경평야가 맞닿은 금만평야로 불리는 이곳 일대는 호남평야의 한복판인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지평선 끝까지 이어진 논 사이로 붉은색 콤바인(복합수확기)이 쉼 없이 벼를 베고 있으나 수확하는 농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벼 잎과 줄기에는 갈색 반점이 퍼져 있었고, 이삭은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추석 무렵 내린 많은 비와 강풍으로 인해 들녘 한쪽의 벼들은 일어서지도 못한 채 그대로 누워 있기도 했다. 콤바인 운전대를 잡은 농민 최모(65)씨는 “올해는 흉작이라 수확을 해도 웃을 수가 없다”며 “벼가 속이 비어서 낟알이 안 찼어요. 겉보기에만 노랗지, 알곡은 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전북 김제 지역의 쌀 수확량은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 진봉면 석소DSC(건조·저장시설) 책임자 박선재(40)씨는 “정선기(곡물 선별기)에 넣으면 껍질이 비어 있거나 쭉정이가 너무 많다”며 “지난해보다 수확량이 15%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이삭이 패는 시기였던 7~8월, 3주 가까운 장마가 이어지며 일조량이 급감했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벼 잎에 곰팡이성 병해가 번지기 시작했다. 바로 ‘깨씨무늬병’이다. 이 병은 잎과 줄기에 검은 반점을 남기며 낟알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게 만든다.

전북도에 따르면 도내 재배면적 가운데 4432㏊가 깨씨무늬병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국적으로는 3만6320㏊의 논이 피해를 입었고, 이 중 전남이 1만3330㏊로 가장 피해가 컸다. 전북 역시 전국 평균보다 높은 감염 비율을 보였다.

농작물 재해로 인정돼 정부가 피해 보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농민들의 시름은 여전하다. 김제에 거주하는 농민 이모(63)씨는 “보상해준다고 해도 농사 망친 걸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며 “병해가 퍼지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보통 한 필지당 약 3t 안팎의 수확량으로 75~80가마를 확보했는데, 올해는 65가마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전북도는 ㏊당 82만원 수준의 보상 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병해충 예찰 강화와 저항성 품종 보급, 장마기 전후 방제 시기 조정 등 중장기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김제=글·사진 최창환 기자 gwi122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