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오빠네 집에 갔을 때, 나는 세상의 영웅들이 방바닥에 널브러진 것을 봤다. 스파이더맨, 배트맨, 아이언맨까지 영화 속에서 세상을 구하던 영웅들이 눈이 덜렁거리고 실밥이 터진 채 서로 얽혀 있었다. 오빠의 취미는 인형뽑기였다. 집 안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인형들을 보며 나는 말했다. “와, 이 정도면 기계를 사는 게 낫겠어요.” 오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재미가 없지. 인형뽑기는 손맛이야.”
오빠는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몇 가지 요령을 말했다. “무게중심을 봐야 해. 중심이 아래로 가면 바로 못 뽑아. 살짝 옆으로 밀어서 넘어뜨려야 해.” 집게의 세기를 읽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기계마다 힘이 달라. 너무 약하면 그냥 굴려서 입구 쪽으로 옮겨야 해.” 마지막으로 오빠는 조준을 가르쳐줬다. “내려갈 때 집게가 살짝 뒤로 밀리니까 목표보다 조금 앞을 노려.”
그 말들은 단순한 요령이 아니라 몸으로 배운 인생의 비유 같았다. 중심을 읽고, 세기를 감각하며,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일. 가까운 것을 붙잡고,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실패해도 다시 손을 뻗는 일.
“계단을 하도 오르내리니까 살이 내려서 이제 허리춤에 주먹이 쑥 들어가.” 오빠가 헐렁한 바지를 잡고 웃었다. “택배 하다 보니 김치랑 생수, 쌀이 제일 무겁더라.”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오빠가 오르락내리락했을 수많은 계단을 떠올렸다. 길게 이어진 계단을 따라 내뱉는 거친 숨. 땀이 식기 전에 또 층계를 오르고, 초인종을 누르며 낯선 집 앞에 택배 상자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형뽑기 기계의 불빛이 파랗게 빛난다. 지금쯤 오빠는 집게발을 천천히 내리며 또 하나의 영웅을 구출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는 매일 상자를 나르며, 그 짧은 휴식이 주는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런 이들의 묵묵한 리듬 위에서 중심을 유지한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