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의 K컬처] 스웨덴 위에 한국

입력 2025-10-25 00:07
김치, 강남스타일, BTS, 영화 기생충 등 일과성 이벤트들에 머물렀던 세계의 관심이 이제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K컬처로 대변되는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현상들, 그리고 그들의 명과 암을 사회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반추해 봄으로써 한국문화의 본성을 재조명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Did you eat lunch yet(점심 드셨어요)?” 내가 묻는다. 상대는 유럽에 있는 대학의 교환학생 입학 담당자. 한국과 달리 밥 먹었냐는 인사가 흔치 않은 스웨덴에서 굳이 이 질문으로 대화를 열어본다. 뜻밖의 질문에 놀란 눈치이지만 아시안이라 그러려니 하며 대부분 미지근함에서 따뜻함 사이의 반응을 보인다. 답이 무엇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학교에서 홍보물로 제작한, 여행용 칫솔과 치약이 든 플라스틱 통을 그들에게 건넨다. 내가 건넨 통을 열어보며 그들은 작은 실소를 터뜨린다. 부디 우리 학교의 이름이라도 기억하길 바라는 간절함이 낳은 사소한 자작극이다.

사실 이 질문을 던진 건 출장 전 궁여지책으로 챙겨온 홍보물이 치약·칫솔 세트였기 때문이다. 흔해빠진 볼펜과 텀블러, 항공편으로는 운송이 어려운 휴대용 핸드폰 배터리를 제외하고 나니 남는 것이 그것뿐이었다. 참 열심히 산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해본다.

이곳은 스웨덴 예테보리의 한 컨벤션 센터. 유럽 국제교육협회의 연례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유럽은 물론 세계 수백 개 대학에서 이곳으로 날아든다. 각국 대학의 국제처 직원과 유학원 관계자들이 유럽은 세계로, 세계는 유럽으로 학생을 보내기 위해 파트너를 찾아 협약을 맺는다. 최근 국제화 지수가 대학평가의 중요 기준이 되면서 실제로 학생 교류가 가능한 대학과의 협약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대학도 여럿 참여하지만, 외국인에 대한 미국 사회의 공기가 차갑고 학비 부담도 만만치 않아 유럽 대학이 더 인기다.

스웨덴, 벨기에, 프랑스, 오스트리아, 체코, 스위스, 노르웨이…. 우리 학생들이 가보고 싶어할 만한 지역의 학교를 물색해 사전에 일정을 잡는다. 대부분 미팅은 30분 남짓. 우리 학교 주요 학과의 국내 랭킹, 영어 강의 리스트,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으로 가득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지만 ‘우리를 기억이나 할까’하는 염려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짧은 만남의 연속. 명함은 쌓이고 메모도 남겠지만, 진짜 중요한 건 상대가 우리 학교의 이름이라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예전에 ‘팬들에게 앞으로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라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기억이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한 가수 타블로의 절절함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초조한 마음, 무엇이든 해야 했다.

우리는 총 이틀 반나절인 행사에서 첫날 만난 이들을 다음 날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같은 시간 새로운 상대를 만날 기회를 포기한 대가로 얻은 기회다. 여기엔 강한 의지의 표출 이외에 한 가지 포석이 더 있다. 초면(初面)은 구면(舊面)이 된다. 초면에는 할 수 없던 이야기나 행동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지고 대화의 스펙트럼도 넓어진다. “점심은 드셨어요?” 같은 질문이 의외일지 몰라도 두 번째 만남에서는 더는 낯설거나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대화와 작은 선물이 상대를 잠시나마 지인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나는 상대의 눈을 응시했다. 대대적인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이 우리 학교 이름 정도는 기억하겠다는 나름의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유럽에서의 첫 영업을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자신을 쓰담쓰담하며 숙소로 향하는 우버에 올랐다. 그때 불현듯 며칠간 만났던 우버 기사들이 모조리 중동계였음을 깨달았다. 콘퍼런스에서 만났던 화이트칼라들과는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다. 인종에 따라 직종이 나뉜 계급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잊고 있던 스웨덴에 대한 단상들이 머리를 때렸다. 내가 그들에게 던진 메시지가 최선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생각은 스웨덴의 실패한 이민정책에서 시작됐다. 2015년 시리아와 중동, 발칸반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16만 명이 넘는 이민자를 받아들였지만, 스웨덴 정부는 이들을 사실상 격리 수용했다. 고등교육과 사회진출의 길이 막힌 이들은 주류사회로부터 고립돼 슬럼을 이뤘다. 이민 1세대야 새 땅에서 기회를 찾은 이방인 신분이라서 저임금이라도 일할 수 있음에 만족했지만 자녀 세대는 달랐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이들은 ‘스웨덴 사람’임에도 서자(庶子) 취급을 받으며 취업과 교육 시장에서 차별받았다. 이들의 적체된 불만은 내전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 폭력시위로 진화해 스웨덴의 경제성장률을 매년 마이너스로 찍어 내리는 중이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대부분의 스웨덴 사람에게 신분 상승의 길은 막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복지를 실현하고 있는 스웨덴의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국가에서 납세자들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받고, 학업 기간에는 국가에서 용돈까지 받는다.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 역시 연간 상한액이 책정돼 있어 의료비 폭탄으로 망할 일이 없다. 노후에도 현역 시절 급여의 절반 수준에 달하는 연금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말마따나 ‘공짜점심’은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세금을 부른다. 스웨덴의 근로 소득세 기본 세율은 32%로, 한국의 최저 세율인 6.6%의 약 다섯 배. 특히 연봉이 8000만원을 넘어서는 고소득층에게는 과세표준 초과분에 대해 20%의 국가세가 추가로 부과된다. 쉽게 계산해 연 소득이 한화 1억원인 경우, 납부해야 하는 세금은 약 3600만 원이다. 한국에서 이 정도 세금을 내려면 연봉이 2억2000만원 이상은 돼야 한다. 한국의 두 배가 넘는 25% 부가세로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은 더 줄어든다. 스웨덴 국세청은 매년 ‘세금달력’을 배포해 납세자 개개인의 상세한 소득 정보를 공시하는 등 탈세 방지를 위한 간접 상호감시 시스템을 작동 중이다.

여기에 낮은 법인 세율과 상속세 폐지로 부의 대물림은 쉽게 이뤄져 상위 1%의 부유층이 전체 국부의 37%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 스웨덴이다. 평등한 소득수준에 비해 기형적이리만치 불평등한 자산 집중도다. 이런 경제구조하에서 일반 국민은 부를 축적하기 어렵고, 개인의 출셋길은 그만큼 제한된다. 스웨덴 사람들이 누리는 복지는 자신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과 욕망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것이다. 깡통을 찰 일도 없지만, 부자가 될 일도 없다. 소수의 부자를 제외하고 나면, 나름 안정적이고 평등한 사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느낌이다. 반면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에 몸부림치면서도 매일 기울어진 운동장 위를 경쟁하듯 달리는 ‘다이내믹 코리아’. 당신은 둘 중 어느 곳을 택하겠는가.

이른 아침 회사 우편실로 들어가니 노란색 편지봉투가 눈에 띈다. 인사과에서 온 편지다. 지난해 내 퍼포먼스가 기준에 미달해 연봉을 10% 삭감하겠단다. 아침부터 기분이 언짢다. 주위 다른 메일함을 둘러본다. 다들 노란 봉투가 하나씩 꽂혀있다. 모두 나와 비슷한 처지임을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방으로 향한다.

며칠 뒤 다시 우편실. 같은 색 편지봉투. 이번엔 작년 실적이 훌륭해 올해 연봉을 10% 올려주겠단다.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해진다. 동료들의 메일함에 이 노란색 봉투는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만 주어진 성과급. 마음이 하늘을 난다.

타인과 같아지고 싶은 욕구는 대개 불안에서 비롯된다.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마음의 안전지대를 확보하려는 수동적 본능이다. 뒤처진 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기를,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처지이기를 바란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자신을 방어하거나 실패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스스로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타인과 차이를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이는 어제의 자신을 초월해 오늘 새로운 자아를 찾을 때 그 결과로써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며, 찰나이긴 하지만 깊은 행복감을 선사한다. 개인으로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가장 어려우면서도 확실한 방법이다.

독자는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낙오자도 없지만, 누구도 부자가 될 수 없는 스웨덴인가, 가난에 허덕일 수도 있지만, 부를 꿈꿀 수 있는 한국인가. 그날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이렇게 시작해야 했다. “Your kids can be rich in South Korea(한국에서는 당신의 아이들이 아직 부를 꿈꿀 수 있습니다)!”

김상연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