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공의회’가 열린 지 1700년이 됐다. 325년 니케아(지금의 튀르키예 북서부 이즈니크)에서 열렸던 교회들의 첫 만남인 니케아공의회는 교리 논쟁의 출발점이 아니라 교회들 사이의 대화가 태동했던 자리였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각각의 신앙 전통을 계승하던 주교 300여명이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십자가형, 부활과 이어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역의 신앙 공동체는 힘겹게 성장해 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이 교회사에 있어 엄청난 전환점이 됐다. 황제가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기 때문이다. 작았지만 강력했던 신앙의 불씨는 이를 기점으로 큰불이 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여러 신앙 공동체도 각자의 신앙이 진리라고 믿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하나의 신앙을 지키기엔 너무 다양한 모습으로 뻗어 나갔다. 각각의 신앙 공동체가 대대로 기억해 오던 ‘예수의 모습’마저 저마다 달랐다. 교회사의 첫 공의회로 기록된 니케아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본체를 두고 격론을 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 지역에서 온 교회 대표들은 긴 논의 끝에 ‘성자는 성부와 한 본질(homoousios)’이라는 고백에 이르렀다. 고백은 ‘니케아 신경’이라는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집대성됐다. 이를 기반으로 381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지금의 ‘삼위일체’를 완성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니케아공의회가 그때 열리지 않았다면 긴 시간 기독교 신학, 신앙의 확고한 정체성이 뿌리내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건 기독교의 기초를 다진 니케아공의회가 어떤 권위에 의한 복종의 과정이 아니라 대화와 만남을 통해 형성된 합의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만나서 대화한다는 교회의 오랜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7일부터 우리나라에서 총회를 여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도 이 같은 전통이 남긴 신앙의 유산으로 니케아공의회의 현대적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WEA는 복음의 본질에 집중하는 국제 기독교 연합체다. 더불어 다른 전통과 언어, 민족 안에서 사역하는 교회들이 6년에 한 차례 만나 총회를 열며 서로를 배우고 협력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복음 플랫폼’이기도 하다.
대화를 통해 복음의 일치를 이루려는 노력의 역사가 어느새 1700년이 됐다. 초대 교부들이 니케아에서 만났던 일이나 곧 서울에서 WEA 회원교회가 모이는 건 모두 한 가지 진리를 증언한다. 교회의 일치란 진리를 수호하겠다는 나만의 의지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만나고 대화하는 가운데 성숙한다는 점이다.
물론 국제 기독교 연합체에 대한 오해도 있다. 종교 다원주의나 배교 논란은 교회사에서 반복돼온 오래된 논쟁이다.
국제 기독교 연합체가 늘 완벽하다거나 옳은 결정만 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전통을 가진 교회들이 회원으로 참여한 만큼 도저히 용납할 수 있는 상대의 모습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연합체가 완전하지 않다고 해서 대화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교회가 만나고 배우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신다.
WEA 서울총회를 앞두고 지난 21일 진행된 대담에서도 대화의 중요성이 언급됐다. 서울총회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의 말이다. “세계에 가보면 기독교 연합체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대화한다. 세계오순절협회도 다양한 국제기구와 평화를 주제로 대화한다. 교회가 마음 문을 열고 대화해야 한다.”
국제 기독교 연합체를 둘러싼 논쟁에서 승리한다고 내 교회가 더욱 성숙하는 건 아니다. 기억해야 할 건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대화의 길 위에서 교회와 복음의 미래가 자란다는 사실이다. 니케아에서 피어난 복음의 불꽃이 오늘의 WEA로 이어지고 있다.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