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잎을 잃고 가지만 앙상한 한겨울의 나목(裸木)을 보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17세기 프랑스 평수사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1614~91)는 18세 때 이를 보며 자연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머잖아 잎사귀가 다시 돋고 꽃도 피겠지. 꽃이 지면 열매도 맺히리라.” 이때 얻은 감동과 깨달음은 그를 40년간 하나님과 긴밀히 동행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로렌스 형제는 ‘기독 고전 맛집’ 12번째 책 ‘하나님의 임재 연습’(두란노)의 저자입니다. 그의 본명은 니콜라 에르망입니다. 에르망은 1633년 ‘30년 전쟁’에 참전했다가 심한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됩니다. 전장에서 돌아와 시간이 꽤 지난 후에도 당시의 기억과 세상의 타락상, 삶의 허무로 번민하던 그는 남은 인생을 복음에 헌신하기로 합니다.
파리의 카르멜 수도회에서 그가 맡은 임무는 수도원 내 잡다한 노동이었습니다. 비교적 낮은 위치에서 사소한 일을 한 로렌스 형제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건 그의 겸손한 성품과 태도, 순수한 믿음과 영성 때문입니다. 100여명의 수도사의 끼니를 챙기는 매일의 분주한 일상에서도 그는 평안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온화한 얼굴과 겸허한 태도를 갖춘 로렌스 형제의 명성이 점차 높아지자 신앙 지도를 요청하는 방문객이 늘어갔습니다. 저명한 성직자와 지식인도 그를 찾아와 영성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당대 유명 성직자인 조제프 드 보포르 수도원장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책에는 보포르 수도원장이 회고한 로렌스 형제와 나눈 대화가 실렸습니다. 그가 상담을 요청해온 이들에게 보낸 편지 등도 있습니다. 이들 대화와 편지 내용의 핵심은 언제나 매 순간 그가 체험하는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로렌스 형제가 처음부터 하나님과 깊은 교류를 한 건 아니었습니다. 수도회 입회 후 10년간 어두운 생각과 죄책감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온전히 주님께 나 자신을 드리겠다”고 다짐하면서 인생의 전기(轉機)를 맞습니다. 그는 일하기 전 “지금의 일과 제 마음을 주님께 드립니다. 저와 함께 일해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한다는 건 교회에 머물러 있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마음을 예배 처소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임재에 거하는 데는 특별한 기교가 필요 없으며 늘 똑같은 마음으로 단순하게 연습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그는 15년간 부엌일을 맡아 해왔지만, 그 일을 전혀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불편한 다리로 오래 서서 요리한 탓에 나중엔 다리에 궤양도 생깁니다. 상황이 악화하자 샌들 제작자로 보직을 옮깁니다. 여러 방문객과의 교류도 이즈음 이뤄졌습니다.
그는 말년에 3차례 병치레를 겪으며 크게 고생합니다. 그럼에도 로렌스 형제는 온화한 태도로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77세의 나이로 평안히 눈을 감습니다.
그의 삶과 영성이 담긴 책은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 등 후대 기독교인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영성 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단순하고 다소 비현실적인 로렌스 형제의 조언은 오늘날 현대인의 삶에도 매우 중요한 도전(challenge)이다”란 평을 남겼습니다. 나우웬의 말처럼, 현대의 바쁜 일상에서 로렌스 형제의 ‘생활 영성’을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요.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