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여 놓친 이야기 찾고
글로 쓰는 고된 일상 견뎌야
진정한 작가로 태어나게 된다
글로 쓰는 고된 일상 견뎌야
진정한 작가로 태어나게 된다
직업은 삶의 리듬을 결정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하루의 속도, 여가의 방식까지. 그것은 생계를 넘어 삶의 구조를 만들고, 우리는 그 구조에 적합한 사람이 돼간다. 짐작하겠지만 ‘돼간다’라는 말에는 직업의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간절히 원했던 일이든 아니든 직업의 의미는 한순간의 선택과 결과물이 아니라, 그 선택을 매일 되풀이하며 수행하는 데 있다. 기쁨과 피로, 성취와 권태가 교차하는 반복 속에서 직업은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쓰는 일도 다르지 않다. 그것이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 행위, 즉 반복이 필요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일정한 양의 글을 쓰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도 책상 앞으로 출근하고, 때로는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일에는 고정된 수입이나 명확한 직책이 없다. 보너스도 퇴직금도 없다. 그러니 쓰는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외부 요건이 아닌 내면의 근거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자격’과 ‘재능’이라고 부른다.
2018년 노벨상을 받은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다이모니온’에 대해 말했다. 다이모니온은 고대 그리스어 ‘다이몬’에서 유래된 말이다. 플라톤은 그것을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라 불렀고,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초월적 감응이나 예감으로 이해했다. 소크라테스에게 ‘다이몬’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는 순간 그를 멈추게 하는 내면의 음성이었다. 토카르추크는 이 개념을 글쓰기에 접목했다. 무언가가 기록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쓰게 된다는 것이다. 자칫 신비하고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내게는 그의 주장이 선명한 언어로 다가온다. 그 ‘다이모니온’을 통해 자격과 재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의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그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각각 광주 5·18과 제주 4·3을 소재로 다룬다. 토카르추크의 말에 따르면 이 주제들을 선택한 것은 작가가 아니다. 말하자면 광주와 제주의 비극이 그들의 작가로 한강을 선택한 것이다. 이때 작가의 자격은 문학 제도나 경력으로 검증되는 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가 나를 통과하도록 허락할 수 있는 내면의 상태, 즉 세계의 고통에 감응하는 깊이에 있다.
또 재능은 이 폭력적인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는 능력, 타인의 고통을 담아내는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가리킨다. 그러니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여, 이제 자격과 재능을 갖추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지지 않았는가. 우리는 먼저 다이모니온을 깨워 이야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두고 온 것, 놓친 것을 가장 오래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더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나를 비워 타자를 내 안에 들여야 한다. 감응한 것을 정확한 언어로 옮기는 훈련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반복해야 한다. 우리가 쌓은 반복의 시간이 자격과 재능으로 치환될 수 있을 때까지.
고대 철학자들은 모든 영혼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며, 운명의 여신은 그 선택이 실현되도록 다이모니온을 불어넣는다고 말했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모두 다이모니온을 갖고 있다. 다이모니온의 다른 말은 자격과 재능이다.
한 작가가 어떤 이야기의 선택을 받을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야기에 자신을 내어주는 용기다. 그것이 온몸을 통과하도록 허락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런 뒤에는 이야기를 선명한 활자, 하나의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 직업인의 지루하고 고된 일상을 반복해야 한다.
당신 안의 다이모니온은 어떤 운명으로 당신을 이끌까. 물론 당신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있다. 운명을 향해 자신을 활짝 열 것인가, 아니면 ‘나’라는 성에 갇히는 안온함을 택할 것인가. 운명의 여신은 영혼이 선택한 길을 되돌리지 못하도록 실을 끊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니 당신의 선택은 그게 무엇이든 필연이 될 것이다.
신유진 작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