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를 신실한 걸음으로 인도하는 동행자

입력 2025-10-24 03:04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거룩한 길 ‘비아 돌로로사’의 시장통 한복판에서 성묘교회로 찾아가는 길이였다. 그때 한 백인 신부가 다가왔다. “길을 잃었습니까. 따라오세요.” 그를 따라가다 마침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순례지, 성묘교회를 만났다.

한 번도 안 가본 길에는 안내가 필요하다. 신앙의 길은 어떨까. 요즘처럼 정보가 널린 시대라도 신앙 여정에선 여전히 안내가 필요해 보인다. 미로 같은 인생에서 신앙의 안내자는 신실한 걸음으로 우리를 목적지까지 인도한다.

유진 피터슨의 ‘한길 가는 순례자’는 이런 안내자와 같은 책이다. 책은 시편 120~134편을 소재로 제자의 길을 다룬다. 저자는 신앙을 단번의 성취가 아닌 긴 여정으로 그려 낸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지루하고 난해한 외길 여행이다. 저자가 이를 순례라고 부르는 이유다. 순례는 참 진리를 찾아가는 길이다. 때론 심각하고 지루하며 진리가 얼마나 얻기 어려운지를 깨닫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여정에 뜻밖의 흥이 있다고 말한다. 열다섯 편의 시편이 동행하기 때문이다. 순례자는 여행을 떠나기 전 ‘메섹’과 ‘게달’에서 나오면서 자기 삶의 참된 기반이며 주관자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고백한다.(120편) 그는 고된 여행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종처럼 마님의 시중을 드는 하녀처럼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숨죽여 기다립니다.… 하나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123편·메시지 성경) 그의 대표작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제목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도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강조한다.

제자도 여정의 종착지는 시편 134편이다. 저자는 피조물이 창조 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게 모든 제자도의 목적임을 재확인한다. 또 순례 여행의 궁극에 ‘하나님 복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성경의 땅에서 기독교 역사 유적지 순례를 기획·인도하는 사역자로서 이 책은 내게 지침서와 같다. 어디 순례 여정 안내자뿐이겠는가. 최단 경로만 추구하는 시대 가운데 제자의 도리를 다하려는 이들에게도 책은 귀중한 선생이 될 것이다.

걸출한 영성가는 떠났지만 그가 생생한 표현으로 쓴 메시지 성경이 담겨 책이 재출간된 게 반갑다. 제자도를 길고 묵직한 ‘한길 가는 여정’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이에게 권한다.

강신덕 샬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