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군대에 다녀온 아들이 있다. 3년 전 아이가 입대를 기다리는 기간이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매일 방 안에서 컴퓨터 게임이나 하며 놀고먹었다. 공장 알바를 함께 가자고 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도 알려주고 아이가 스스로 돈 버는 법도 알게 하고 싶었다.
컴퓨터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면서 “응, 엄마!” 하고 무심결에 대답했다. 놓치지 않고 인력 알선업체에 알바 신청을 했다. 업체는 다음 날 화장품 포장 공장에 여자와 남자 모두 필요한 자리가 있다고 답변을 했다. 연락은 아들에게 직접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스무 살 성인이 아닌가.
다음 날 아들과 함께 화장품 포장 공장으로 갔다. 자동차에 태우고 가면서 알바라고는 처음 해보는 아들이 걱정스러웠다. 맨날 집에서 해주는 밥을 얻어먹으며 챙김을 받던 애가 사람들 속에서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세상은 냉혹하니 휴대전화 보지 말고 공장 반장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사장님이 모자(母子) 알바가 왔다고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셨다. 작업반장은 곰처럼 덩치가 큰 아들을 보더니 일을 잘하게 생겼다고 칭찬했다. 아이는 예절 바르게 인사하며 “흐흐흑” 하고 웃었다. 오전에는 여자와 남자가 하는 작업이 달라 각각 다른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음악을 들으려는지 가져온 이어폰을 귀에 꽂아서 내가 손등을 꼬집자 아이가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해!”
오전에 여자는 화장품 포장을 하고 남자들은 포장된 화장품을 쌓고 나르는 작업을 했다. 화장품이라 무겁지 않아 다행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 아들이 여자들이 일하는 작업장으로 왔다. 반장이 엄마 옆에 가서 일하라고 했단다. 함께 일하던 언니들이 반가워하며 아들이 귀엽다고 한마디씩 했다. 내가 무거운 포장지를 나르려고 하자 아들이 말했다. “엄마! 냅 둬. 내가 할게.” 언니들이 효자 아들 왔다고 난리가 났다. 휴! 남의 속도 모르고.
다음 날은 쉬었는데 아침 9시부터 인력 알선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아들이 출근을 안 했단다. 전날 공장 사장님이 좋게 보고 그날 또 와 달라고 부탁을 해 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들은 “네! 알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답문을 했단다. 그런데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고 그때 자고 있었다. 알바 나간다는 얘기를 하지 않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당장 방문을 걷어차고 들어가서 침대에 자고 있는 아들의 등짝을 스매싱했다. 아이는 꿈쩍도 안 하고 내 손만 아팠다. 눈을 겨우 뜨고는 “엄마, 왜 그래?” 하고 물었다. “알바 가는 날 아니니? 네가 오늘 안 나가면 손해 보는 사람이 몇인데.” 소리를 빽 지르자 아들은 벌떡 일어나더니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5분 만에 나갈 채비를 갖춘 아들을 차에 태워서 공장 앞까지 데려다줬다.
공장 500m 앞에서 아들이 세워 달라고 했다. 엄마가 태워준 거 들키면 안 된다고 차에서 내려 걸어온 척했다. 알바를 하면서 스무 살 아들은 그렇게 어른이 돼가는 법을 배웠다.
김로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