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0월 25일]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입력 2025-10-25 03:14

찬송 :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440장(통49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16장 6~15절


말씀 : 바울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걸었습니다. 그는 소도시로 숨어다니지 않고 로마의 대로를 따라 다음 도시로 향했습니다. 그 길이 언제나 평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 했을 때 성령이 막으셨고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 할 때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막힘을 실패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왜 막으십니까’보다 ‘어디로 이끄십니까’를 묻는 태도가 하나님의 대로에 서는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비두니아에서 돌리셨지만 그 땅을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벧전 1:1) 우리 인생의 ‘닫힘’도 누군가에게는 ‘열림’이 됨을 기억합시다. 드로아에 선 바울은 밤에 환상을 봅니다. “마게도냐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 천사도 불기둥도 아니고 사람의 요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타인의 필요를 통해 우리 길을 비추십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은 즉시 떠났고 사모드라게를 거쳐 이틀 만에 네압볼리에 닿았습니다. 원래 닷새 걸리던 항해가 순풍을 만나 짧아진 것도, 길 위에서 동행자 누가가 합류해 ‘그들’에서 ‘우리’로 시제가 바뀐 것도(행 16:10)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사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던 건 아닙니다. 빌립보는 로마 식민지로 그전까지 있었던 유대인의 회당조차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익숙한 사역 문이 막히자 서두르지 않고 ‘수일을 유(留)하며’ 기도할 곳을 찾습니다. 지연은 낭비가 아니라 분별의 시간입니다. 우리도 ‘이 문제가 해결되면 순종하겠다’가 아니라 보이는 빛 한 줄기 앞에서 즉시 순종하고 보이지 않을 때는 멈춰 분별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결국 성문 밖 강가에서 루디아를 만납니다. 두아디라 출신 자색 옷감 장사였으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갈급한 영혼이었습니다. 복음의 열매는 바울의 수사나 전략이 아니라 주께서 그 마음을 여신 결과였습니다.(행 16:14) 변화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개인의 마음이 열리면 곧 ‘그와 그 집’이 세례로 응답하고 그 집이 복음의 거점이 됩니다.

훗날 마게도냐 교회들이 환난 중에도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히 나누는 공동체가 된 것(고후 8:1~2), 복음 전파 초기부터 바울의 사역에 유일하게 동참한 교회가 빌립보였던 것(빌 4:15)도 이 강가의 작은 만남에서 비롯됐습니다. 하나님이 여시는 변화는 언제나 사람과 식탁과 집에서 번져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예배의 식탁도 하나님이 길을 내시는 현장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장애물 앞에 멈춰 분별하고 하나님이 여실 마음을 기대하십시오. 막힘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고 ‘수일을 유함’은 게으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타이밍에 우리를 맞추는 영성입니다. 닫힌 문 앞에서 낙심 대신 분별을 묻고 열린 문 앞에서는 지체 없는 순종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대로(大路)에 서는 가정이 돼야 하겠습니다.

기도 : 하나님, 닫힌 문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열린 문 앞에서는 즉시 순종하게 하소서. 우리 걸음과 만남을 주관하시고 우리가 전하는 말 위에 성령의 능력을 더하사 변화의 열매를 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요한 서울 송정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