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과 통찰력이 있는 성직자가 사용하던 걸 평신도와 글을 아는 여성에게까지 개방된 평범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복음서의 진주를 돼지들이 짓밟게 퍼뜨린 것이다.”
14세기 영국 교회사가 헨리 나이튼이 종교개혁가 존 위클리프가 번역한 영어 성경을 두고 남긴 기록이다. 위클리프는 종교개혁을 촉발한 독일 신학자 마르틴 루터보다 2세기 앞서 사제와 지식인의 전유물인 라틴어 성경을 민중 언어인 자국어로 번역했다.
영어 성경 필사본이 인기를 끌자 교회는 반발했다. 1391년엔 이를 소지한 사람을 투옥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다. 1408년엔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면 파문한다는 결정도 내렸다. 이 모든 일의 근원인 위클리프는 1427년 교황 마르티노의 명에 따라 무덤에서 유골이 꺼내져 화형을 당했다.
영국 런던대서 아람어 성경 번역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이자 유대 문화 관련 대중서를 여럿 펴낸 저자는 이처럼 각종 폭력과 논란이 끊이지 않은 번역 성경의 역사를 추적했다.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라틴어에서 각 지역 언어로 번역된 성경엔 늘 논쟁과 갈등이 따라붙었다. 기존 권력과 체제에 대항해 나온 “번역 성경은 본디 급진적이고 영감을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원전 2~3세기 번역된 70인역부터 현대 번역본까지 수많은 번역 성경 이야기 중 비교적 덜 알려진 사례 위주로 발굴해 책에 실었다.
19세기 등장한 최초의 여성 번역자이자 여성 참정권론자인 줄리아 스미스도 그중 하나다. 미국의 당대 여성과 달리 고등교육을 받아 각종 언어와 학문에 정통했던 그는 성경 전체를 영어로 완역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여론은 동요했다. 한 신문은 그를 겨냥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려는 여성이 있다”고 논평했다. 저자는 “스미스의 성경은 위대한 번역서로 손꼽히지도, 널리 읽히지도 않았다”면서도 “여성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성경 번역사를 가르는 그의 주요 기준 중 하나는 ‘폭력’이다. 번역 성경을 두고 폭력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는 교회가 자국어 번역을 엄금했던 중세 시기다. 체코의 얀 후스, 독일의 루터, 영국의 윌리엄 틴들은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했다가 거센 핍박을 받은 대표적 인물이다. 후스와 틴들은 위클리프와 달리 생전 화형을 당했는데, 저자는 이 핏빛 역사에 스페인 유대인 사례도 더한다. 당시 가톨릭교회가 스페인어 구약성경과 함께 이들을 불태운 이유는 “정통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자국어 성경은 각 언어의 발달과 문화 융성에 기여했다. 8개 국어에 능통했던 틴들은 현대 영문학의 기초가 되는 세련된 표현으로 성경을 완역했다. 그가 번역하며 만든 영단어로는 ‘속죄양’(scapegoat) ‘오래 참음’(long-suffering) ‘유월절’(Passover) 등이 있다. “원본에 비길 정도로 아름다운 번역본”으로 후대에 손꼽히는 ‘킹 제임스 성경’ 역시 틴들의 번역을 대다수 수용했다.
번역 성경이 인류사에 끼친 공이 크지만, 그 반대 사례도 있다. 저자는 16세기 독일 뮌스터 지역을 18개월 동안 장악했던 재세례파 유혈 사태를 들며 ‘번역 성경으로 빚어진 유일한 폐해’로 소개한다. 당시 뮌스터를 장악했던 이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일부다처제를 강제하는 등의 기행을 벌였다. 이를 언급하며 저자는 이런 경고를 남긴다. “급진적 근본주의는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종교적 극단주의는 인간의 해석이란 프리즘을 거부한 채 계시된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읽는 방식에 의존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책인 성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손에 들어왔는지를 흥미진진한 이야기 위주로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성경 본문의 진정한 의미와 이를 충실하게 번역하는 방식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성경 번역본이 나올 것으로 본다. 그는 현대 성경 번역본을 두고 열띤 논쟁을 벌이는 이들에게 질문한다. “특정 성경의 추종자들은 신념에 따라 믿는 것인가, 아니면 정서적 애착 때문에 믿는 것인가.”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도 한 번쯤 생각할만한 질문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