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스며들어 짓밟는 정신적 독을 품은 사람들

입력 2025-10-24 00:10
게티이미지뱅크

#직장 상사는 A를 독려하기 위해 늘 승진이나 임금 인상의 가능성을 넌지시 흘린다. A는 자신의 노력이 결국 보상받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매일 야근도 마다 않고 번아웃이 올 정도로 회사 일에 매달린다. 매번 원하는 보상을 얻지 못하지만 상사에게 따질 수가 없다. 자신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고 싶지 않고 상사와 관계가 어긋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B는 부모로부터 “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냐” “바보같이 울긴 왜 우니”라는 말을 항상 듣는다. 그때마다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B는 불안과 무력감을 느끼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다. 그저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생각만 할 뿐이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이지만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다. 주위 사람들이 또는 나 자신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잘못된 관계에 엮여 번민의 나날을 보내면서도 잘못이 그들에게 있지 않고 나한테 있다고 자책한다는 점이다. 독일의 임상심리자인 저자들은 당신이 아니라 그들이 문제라고 분명히 말한다. 저자들은 ‘그들’을 ‘정신적 독을 품은 사람들’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독성을 지닌 사람들은 우리 삶에 조용히 스며들어 우리의 행복과 평안을 짓밟는다. 어떻게 하면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책은 심리학이라는 전문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실제 상담 사례들을 바탕으로 독이 되는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그들의 특징과 조작 기술을 알아야 한다. 정신적 독을 품은 사람들은 낮은 공감 능력, 높은 수준의 자기중심성, 책임감 부족 등의 특징을 보인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특유의 전술을 구사한다.

우선 관계 초기에 구사하는 전술은 ‘러브 바밍’(love bombing·과도한 애정 공세)이다. 저자들은 “칭찬과 선물을 퍼주고 무조건적 헌신을 할 것처럼 다가가면서 마치 열정의 폭풍처럼 피해자의 삶을 휩쓸고 지나간다”고 말한다. 러브 바밍은 ‘백설공주’의 독이 든 사과처럼 겉으로는 맛있게 보이지만 뒤에는 위험한 속임수가 자리잡고 있다. 러브 바밍의 목적은 상대를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하게 될 문제적 행동들이 별 거 아니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사전 작업이다. 그로 인해 피해자들은 조종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더라도 그저 착각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늘 조종자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또 끊임없이 장밋빛 미래를 제시한다. 앞서 A의 사례처럼 직장인이라면 승진이나 임금인상 가능성을 언급하는 방식이다. 피해자는 관계를 이어가면서 희망과 실망의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게 된다. 가장 악질적인 것은 ‘가스라이팅’(상대방의 심리를 조작해 지배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스라이팅을 통해 피해자의 자신감과 관점을 뒤흔들어 지속적인 의심과 불안에 빠뜨리고 의존성을 강화시킨다. 피해자에게 고립감을 심어주는 ‘냉담한 태도’를 보이거나 의도적으로 제3자와의 비교를 통해 질투와 경쟁을 유발하면서 통제력을 강화하기도 한다.

그들의 조작 전술을 파악했다면 독이 되는 관계를 알아차리고 관계를 끝내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들은 “치유로 향하는 길은 해로운 관계에 갇혀 지낼 운명을 나고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며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독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관계의 위기에서 벗어 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산만하다’는 것은 ‘창의적이다’로, ‘내향적이다’ 또는 ‘예민하다’는 것은 ‘공감력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로 대체가 가능하다. 또 독이 되는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능력이나 행동이 어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 즉 자기효능감도 키워야 한다. 저자들은 실제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이유를 생각하면서 “해야 한다”가 아닌 “하고 싶다”고 바꿀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면 “나는 운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파트너가 나를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는 문장을 “나는 운동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가벼운 몸으로 좋은 기분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로 바꿀 수 있다.

이제 그들을 놓아줘야 한다. 저자들은 “놓아주는 길은 성장의 길이기도 하다”면서 “이 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자신의 진정한 욕구에 더 부합하는 삶에 가까워진다”고 말한다. 놓아주기 위해서는 과거 상황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공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제의 당사자와 거리를 둬야 한다. 감정에 이끌려 놓아주기 힘들 때는 작별 편지처럼 놓아주기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의식’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다.

저자들이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힘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우리가 영향을 미칠 영역 바깥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갖게 되면 인생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내면의 평온과 충만한 삶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 세·줄·평 ★ ★ ★
·독이 되는 사람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문제는 나에게 있지 않다, 독이 되는 사람에게 있다
·놓아주는 순간 진짜 내가 돌아온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