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와 학생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온전한 가르침과 배움을 완성하기 위해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다. ‘글쓰기를 노동 삼아 일의 세계를 알고자 한다’는 저자는 배우는 곳으로만 알고 있는 학교가 아닌 ‘일터로서의 학교’를 조명한다. 사실 학교는 100여개의 직종이 얽혀 돌아가는 노동의 현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초중고교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은 17만명, 그밖에 방과후교실 강사 등 비정규직 강사를 포함하면 대략 35만명이 학교를 일터로 삼는다. ‘가르치는 일’을 하는 교사 36만명과 맞먹는 숫자다. 저자는 이 중 13개 직업의 종사자를 만나 그들의 애환과 보람이 섞인 목소리를 담아냈다.
학교에는 당당히 ‘선생님’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학생들로부터 ‘선생님도 선생님이에요’라는 질문을 받는 이들이 있다. 초등학교 돌봄교실을 담당하는 돌봄전담사는 학생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찾지만 교사들은 그를 실수로라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눈에는 다 같은 선생님이지만 어른들은 “단순한 고용 형태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선생님이라고 불리지는 않더라도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배움을 나눈다. 저자와 만난 돌봄전담사는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꾸준히 익히게 한다. 그는 “자신이 불편하거나 상처 입은 지점을 인지하고, 그걸 말하고, 서로 해결하는 연습을 해 나가도록 한다”면서 “돌봄 교실에서는 아이들을 생활 속에서 지도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들이 전해 준 배움이 학교라는 공간을 채운다”면서 “선생님은 선생님이다”라고 외친다.
학교에는 선생님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사람으로만 나뉘는 게 아니다. 일하는 곳을 물었을 때, ○○학교라고만 답할 수 있는 사람과 구체적으로 ○○학교 ‘어디 어디’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로도 나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직업이 교사인 사람들은 일하는 학교가 어딘지 물었을 때 ○○학교라고 말하면 끝이지만 교사 이외의 직종은 “○○중학교 급식실이요” “○○초등학교 경비실이요”라고까지 일하는 구체적 장소까지 답을 해야 한다. 이들이 얼핏 보면 별거 아닌 일을 쉽게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치열한 노동이 있다. 영양사는 음식을 식판에 담기까지 수많은 서류 작업과 식재료 주문과 검수, 레시피 개발까지 수많은 과정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 그래도 “맛있어요” “잘 먹었어요”라는 학생들의 한 마디에 보람을 얻는다. 수백명의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학교보안관은 언뜻 등하굣길 정문에서만 일하는 것으로만 비친다. 하지만 학교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경비실에서 잠시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과 식사 시간도 아껴야 하는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스승의 날 학생들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를 받은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카네이션은 학교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표식이었다. 그러나 한 송이의 카네이션은 평상시 ‘온전한’ 학교 구성원이 될 수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터뷰에 응한 많은 사람들은 학교 안에서 사진 촬영을 피하고 인터뷰도 학교 인근 카페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저자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다양한 존중이 필요하다”면서 “교육은 교실 안팎을 가리지 않고, 평등한 일터에서 평등한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의 추천사를 빌리면, 책은 “단순한 노동의 기록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진정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조용한 질문”이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