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고 굴러도 계속 달렸다… 현대차 N 10년의 도전

입력 2025-10-24 00:11
경기도 의왕시 현대자동차 N 아카이브에 역대 N 브랜드 차량들이 보관돼 있다. 현대차는 올해 N 브랜드 10주년을 맞아 2030년 N 브랜드와 N 라인 차량 연간 판매량 10만대를 목표로 내걸었다. 현대차 제공

현대자동차의 고성능 브랜드 ‘현대N’이 출범 10주년을 맞았다. 2014년 레이싱 무대 복귀를 계기로 첫선을 보인 N은 지난 10년간 내연기관과 전동화를 아우르며 ‘고성능 기술의 상징’으로 성장해왔다.

남양과 뉘르부르크링, 두 ‘N’에서 출발한 철학

N은 현대차 연구·개발의 본거지인 경기도 화성 남양연구소(Namyang)와 고성능차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 뉘르부르크링(Nurburgring)에서 이름을 따왔다. 로고의 알파벳 ‘N’은 연속된 코너를 의미하는 씨케인(Chicane)을 형상화했다.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닌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현대차는 그저 빠른 차를 만드는 대신, ‘조향·가속·제동의 균형’을 통해 운전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차를 목표로 삼았다. 이후 10년간 N은 기술과 감성의 결합을 통해 이 철학을 구체화해왔다.

N의 출발점은 2014년 월드랠리챔피언십(WRC) 복귀였다. 현대차는 2003년 이후 11년 만에 랠리에 복귀했고, 이듬해인 2015년 N 브랜드를 공식 론칭했다. 복귀 첫 시즌 독일 랠리 예행연습 중 차량이 7차례 전복되는 사고를 겪는 등 고전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재도전 끝에 완주와 첫 승리를 거뒀다. 박준우 현대차 N매니지먼트실 상무는 “완주조차 불가능하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으나 N은 이를 극복하고 첫 랠리 우승이라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며 “이 순간은 N의 역사에서 상징적인 전환점이자, 브랜드 정신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2017년 현대차는 첫 고성능 양산차 i30N을 유럽 시장에 출시했다. 주행 밸런스와 조작감으로 호평받으며 ‘일상 속의 고성능’이라는 N의 콘셉트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다음 해 등장한 벨로스터N은 수동변속기와 가변 배기 시스템 등 국산차에서는 보기 힘든 사양을 탑재해 국내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운전의 재미’를 중시하는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정의선 회장 “고성능은 현대차의 미래 기술”

현대차가 고성능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강한 의지가 있었다. 정 회장은 2018년 CES 현장에서 “마차를 끄는 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싸우거나 잘 달리는 경주마도 필요하다. 고성능차에서 얻은 기술을 일반차에 접목할 때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2017년 i30N TCR, 2019년 벨로스터N TCR, 2020년 아반떼N TCR 등 판매용 경주차도 연이어 선보였다. 2019년에는 WRC 참가 6년 만에 한국팀 최초로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달성했다. 이듬해 다시 한번 정상에 오르며 현대차의 고성능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에 올랐음을 입증했다.

아이오닉6N(왼쪽부터) 두 대와 아이오닉6N 드리프트 스펙이 지난 7월 10일(현지시간) 영국 웨스트서식스에서 열린 자동차 축제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 메인 브릿지에 서 있다. 현대차 제공

N은 랠리와 투어링카 시리즈에서 검증한 기술을 양산차에 이식하며 ‘기술 브랜드’로 진화했다. WRC에서 축적한 주행제어, 냉각, 서스펜션 기술은 벨로스터N과 코나N 등 모델 개발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현대차는 운전의 즐거움을 기술로 구현하는 브랜드라는 평가를 얻었다.

전동화 시대로 접어든 뒤 N은 새로운 실험을 이어갔다. 2019년 시작된 롤링랩(RM) 프로젝트는 전기·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기반의 고성능 기술 개발 플랫폼이다. 이후 공개된 RM19와 RM20e는 모터스포츠 기술을 전동화로 확장하기 위한 시험대 역할을 했다.

2022년 공개된 콘셉트카 N 비전 74는 수소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하고, 1974년 포니 쿠페의 디자인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또 다른 롤링랩 RN22e는 전동화 성능과 제어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며 최근 출시된 아이오닉6N의 기반이 됐다.

새로운 도전 ‘연간 10만대 판매’ 목표

현대차는 2030년까지 N 및 N 라인 차량의 연간 판매를 10만 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2만3000여대에서 4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현재 5개인 라인업은 7개 이상으로 확대되며, 글로벌 주력 모델 기반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고성능 모델이 추가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N의 여정은 운전의 고유한 즐거움을 지키는 여정이었다”며 “기술이 변해도 즐거움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