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위비 압박 구실 삼은 일본, ‘전쟁 가능 국가’ 노린다

입력 2025-10-23 02:03
다카이치 사나에(앞줄 가운데) 일본 총리가 21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새 내각 각료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 양옆에는 하야시 요시마사(왼쪽) 총무상과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 서 있다. 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취임과 동시에 방위비 증액을 포함한 방위력 강화에 나선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을 구실로 ‘전쟁 가능 국가’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움직임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22일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첫날인 전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에게 ‘안보 3문서’ 조기 개정 등 근본적인 방위력 강화를 지시했다”며 “다카이치 총리는 24일로 일정을 조율 중인 소신 표명 연설에서 ‘안보 3문서 조기 개정’을 언급한 뒤 그 방침을 28일 만날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자립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의 방위력을 확실하게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자립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체제’란 결국 자위대의 국방군 전환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평화 헌법에서 ‘전쟁 포기’ 조항을 삭제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명시하는 내용의 개헌을 추진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방 기조를 지지해 왔다.

다카이치 총리가 전날 밤 국가안전보장국장을 전격 교체한 것에 대해서도 요미우리신문은 “안보 3문서 조기 개정을 염두에 둔 기용”이라고 짚었다.

다카이치 내각의 대중국 외교는 전임 이시바 시게루 내각의 기조에서 일부 방향을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의 소신 표명 연설문 초안에는 지난해 10월 이시바 전 총리의 소신 표명 연설에선 언급되지 않았던 ‘일본과 중국 사이에 안보·경제에서 우려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는 문구가 들어갈 예정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다카이치 총리 취임에 대한 공식 축하 메시지를 내지 않은 가운데 관영 신화통신 계열 소셜미디어 계정 ‘뉴탄친’은 “우리가 반가워하든 그렇지 않든 일본 총리는 또 바뀌었다. 세상은 트럼프 하나로 복잡한데 ‘여자 트럼프’가 나왔다”고 비난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신임 외무상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의 여러 과제에서 파트너로서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 나라”라면서 “일본과 한국 간에는 어려운 문제와 과제도 있지만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지금까지 구축해온 관계에 기초해 한·일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2019~2021년에도 외무상을 맡았던 그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졌던 2021년 “한국에 의해 골대가 움직여지는 상황이 늘 벌어지고 있다”고 한국 정부를 비판했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외국인 정책 담당 부서도 신설했다. 오노다 기미 신임 경제안보담당상은 ‘외국인과의 질서 있는 공생사회 추진실’ 수장을 겸직해 다카이치 내각의 불법체류자 대응,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 규제 등을 책임지게 된다. 1982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두고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