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금까지 뭐하다가…” 현지 교민들 불만 폭주

입력 2025-10-23 00:04
22일 재캄보디아한인회가 위치한 캄보디아 프놈펜 부영타운의 모습.

세계적인 관광지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교민 A씨는 취재진이 근황을 묻자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 16일 외교부가 캄보디아 일부 지역에 여행금지 경보(4단계)를 발령한 뒤 급격히 예약 취소가 늘었기 때문이다. A씨는 22일 “캄보디아에서 납치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며 “지금껏 가만히 있다가 범죄조직들이 보따리 다 싸들고 도망친 뒤에서야 여행금지 경보를 발령해서 모든 피해는 교민들이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지 교민사회에서는 지난해부터 캄보디아 내 범죄단지(웬치) 문제에 대한 경고가 이어졌지만 정부가 사실상 이를 외면해 왔다는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대응에 나섰지만 이 과정에서도 급작스러운 여행경보 단계 상향 등 보여주기식 조치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교민사회는 그간 손 놓고 있던 정부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자 그제야 늑장 대응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교민 B씨는 “특별한 사건이 없었으면 이번에도 유야무야 갔을 개연성도 있다”며 “결국 취업사기든 자발적으로 온 것이든 한국에서의 단속 노력이 먼저인데 여행경보만 갑자기 올려버리면 이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수습 과정에서 부실대응으로 인한 지적을 수차례 받아왔다. 특히 주캄보디아 대사관은 지난해 현지 경찰 신고 방법을 안내하며 대사관이 제공할 수 있는 직접적 지원 대신 “본인 위치, 연락처, 건물 사진(명칭, 동·호수), 여권사본, 현재 얼굴사진, 구조 요청 메시지가 담긴 동영상을 준비해 현지 경찰에 신고하라”고 공지해 비판을 받았다. 피해자 구출 이후에도 “열악한 환경에 구금돼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는 등 사실상 손을 놓은 듯한 태도를 보였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 자리도 7월 이후 3달가량 공석이었다.

정부 대응에 가장 크게 타격받은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 관광지인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레아프다. 교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여행업체 등의 예약은 사실상 0건으로 줄어들었다. 연말 한국에서 들어올 예정이었던 전세기까지 대부분 취소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시엠레아프 한인회 관계자는 “시엠레아프는 카지노도 없고 강력범죄도 한 번 발생한 적 없다”며 “일주일 만에 여행경보가 막 올라가는데 국내에 계신 분들이 지역을 구분해서 보겠느냐. 교민 대부분은 체념한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는 취업사기로 인한 납치·감금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경보 상향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존부터 경보 상향은 검토해 왔던 부분이지만 교민 피해를 우려해 늦춰 왔던 것”이라며 “다양한 노력에도 부족하다는 판단에 여행금지 카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교민 피해를 줄일 방안도 계속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프놈펜·시아누크빌=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