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에쓰오일 울산 온산공장. 공장 입구에서 10분가량 버스를 타고 이동하자 초대형 크레인과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등장했다. 비가 내리는 굳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빨간색과 형광 연두색 조끼를 입은 근로자들이 빼곡한 건설 장비들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안전대와 사다리가 설치된 복잡한 구조물 사이를 오가며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의 모습이다. 에쓰오일은 국내 석유화학 사상 최대 규모인 9조2580억원을 투입해 88만1000㎡(약 26만6500평) 부지에 폴리머 공장, 스팀크래커(Steam Cracker) 등을 포함한 최첨단 석유화학 복합시설을 세우고 있다. 축구장 123개가 들어갈 만한 규모다. 샤힌은 아랍어로 ‘매’를 뜻한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스팀크래커였다. 스팀크래커는 나프타와 액화석유가스(LPG), 부생가스 등을 원료로 에틸렌, 프로필렌 등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물이다. 전체 설비가 완공되면 연간 180만t의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단일 설비 기준 세계 최대 규모다.
아파트 50층 높이의 프로필렌 분리타워도 우뚝 솟아 있었다. 높이 118m에 직경 8.5m, 무게 2370t으로 국내 석유화학 업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프로필렌 분리타워는 프로필렌 생산에 사용되는 설비다. 프로필렌은 배달 용기, 자동차 내장재, 의약품 등에 쓰이는 합성수지 폴리프로필렌을 만드는 기초 원료다.
TC2C 시설도 건설되고 있었다.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개발한 TC2C는 원유에서 바로 나프타, LPG 등 석유화학 원료를 뽑아내는 신기술이다. 세계 최초로 가동되는 이 기술은 기존 공정보다 석유화학 원료 생산 수율이 3~4배 정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단순화된 공정을 통해 수율을 70% 이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현장에서 5㎞가량 떨어진 2구역에선 폴리머 공장이 세워지는 중이다. 스팀크래커에서 생산한 에틸렌을 원료로 폴리에틸렌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폴리머 공장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화 창고도 들어서는 등 효율성을 극대화한 물류 시스템이 구축될 예정이다.
샤힌 프로젝트는 국내 최대 규모 사업답게 투입되는 공사 물량, 장비 등도 압도적 스케일이었다. 토목 약 33만3000㎥, 철골 약 9만8000t, 배관 약 1480㎞가 넘게 사용됐다. 투입 인력도 하루 평균 1만1000명에 달한다. 현장 관계자는 통근 버스만 50대 넘게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프로젝트 공사는 약 85.2%까지 진행됐다. 시설 완공 목표 시점은 내년 6월이다. 이후 시운전을 거쳐 내년 하반기 중 본격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샤힌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장기 불황으로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태풍의 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에쓰오일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등 연료유 제품을 생산하는 정유 위주에서 석유화학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꾀하고 있다. 현재 12% 수준의 석유화학 비중을 2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신규 시설은 공정 단순화, 에너지 효율 극대화, 탄소 배출 저감 측면에서 탁월하다”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에쓰오일의 정유-석유화학 수직 계열화 체제가 한 단계 더 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