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2일 동해상에 미상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여러 발을 발사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은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며, 올해 들어 다섯 번째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앞두고 한반도 정세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미국을 향해 군사·외교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전략적 계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합동참모본부는 “오전 8시10분쯤 북한 황해북도 중화 일대에서 동북 방향으로 발사된 단거리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 여러 발을 포착했다”며 “포착된 미사일은 약 350㎞ 비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일과 관련 정보를 긴밀하게 공유하면서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 당국은 사거리, 고도, 속도 등 제원을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지난 5월 8일 여러 종류의 SRBM을 섞어서 발사한 이후 167일 만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여러 발을 발사한 점과 사거리를 근거로, 발사체가 극초음속미사일보다는 이동식발사대(TEL)로 쏜 전술탄도미사일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극초음속미사일은 단발 발사가 일반적이다. 권용수 국방대학원 명예교수는 “비행거리와 무력시위 측면에서 볼 때 지난해 시험발사한 신형 탄도미사일 ‘화성포-11다-4.5’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화성포-11다-4.5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SRBM의 탄두를 4.5t 고중량으로 개량한 미사일이다.
이번 도발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을 앞두고 APEC과 미국을 겨냥한 전략적 신호로 해석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석좌교수는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핵 보유 과시용 도발로 일종의 찔러보기”라고 평가했다. 긴장감을 조성해 APEC 참여국에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에는 조건부 회담 가능성을 제시한 복합적 메시지라는 것이다.
그간 대출력 고체엔진이 장착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20형’의 시험발사 관측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지 않은 건 북·미 회담 여지를 남기기 위한 수위 조절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미를 겨냥한 초강력 군사 도발인 ICBM 발사는 회담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과의 대화 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한국 주도 행사인 APEC에 재를 뿌린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말 판문점 등에서 전격적으로 회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가능성은 낮지만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시드니 사일러 선임고문은 21일(현지시간) 온라인 대담에서 양 정상의 회동 가능성에 대해 “‘잘 지냈나, 다시 보니 반갑다’라고 인사하는 수준이라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비핵화라는 목표에 대한 차이는 단발성 회담, 특히 판문점 같은 즉석 회담에서 극복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 협의차 바티칸 교황청을 찾아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에게 레오 14세 교황의 방북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우 의장은 “세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매우 큰 상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고, 파롤린 국무원장은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고 화해와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리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송태화 한웅희 기자,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