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 대해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헝가리에서 조만간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2차 정상회담을 열겠다고 했지만 입장이 다시 바뀐 것이다. 2차 정상회담이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 관련 질문에 “시간 낭비하는 회담을 원치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기 전까지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 “어떻게 될지 지켜보겠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발언은 백악관이 미·러 정상회담을 당장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직후 나왔다. 트럼프는 지난 16일 푸틴과 통화한 뒤 “큰 진전이 있었다”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푸틴과 다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러시아가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정상회담이 무산되는 기류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전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통화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 전체를 점령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루비오 장관이 백악관 관계자들에게 푸틴과의 즉각적인 정상회담이 평화협상에서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을 계속 바꾸고 있다. 최근엔 러시아가 전쟁을 장기화하고 있다며 모스크바까지 타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가 푸틴과 통화한 뒤 제공 의사를 보류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유럽 주요국 정상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현재 전선을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점령 지역까지 포함한 돈바스 전체를 포기하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지난 17일 백악관에서 젤렌스키를 만난 뒤 트루스소셜에서 “그들(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은 지금 위치에서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젤렌스키와의 비공개 회담에선 러시아 주장대로 돈바스 전체를 포기하라고 압박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와 유럽 측의 우려가 커졌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트럼프를 만나기 위해 이날 워싱턴DC로 향했다. 트럼프가 러시아 측 입장으로 기울지 않도록 설득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